1. 유식이의 33년
유식이의 33년
⠀
1984년, 유식이의 엄마는 안양의 한 사육곰 농장에서 화천으로 옮겨집니다. 어린 새끼였다고 합니다. 사육곰 붐을 타고 전국 곳곳에 세워진 콘크리트 곰 사육장. 그렇게 새로 지은 농장에서 유식이의 엄마는 5년을 자라서 새끼를 낳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해에 두 번째로 낳은 새끼가 유식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유식이는 대략 1990년 정도에 태어났습니다.
⠀
유식이도 새끼를 잘 낳는 곰이었습니다. 일본 아종의 반달가슴곰 암컷 치고는 유난히 덩치가 컸고, 유식이가 낳은 곰들도 덩치가 컸다고 합니다. 유식이의 가치는 한 개의 웅담 이상이었기 때문에 죽지 않고 계속 살아남았습니다. 농장주에게 특별한 가치가 있었고, 좋은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 대접은 아무리 좋아봐야 네 평 짜리 사육장 안이라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
2021년 6월, 저희는 유식이를 처음 돌보게 되었습니다. 그 때는 몰랐지만 이미 유식이는 서른 살짜리 곰이었네요. 척추 질환으로 걷지 못해서 먼저 세상을 떠난 보금이 옆 칸에서, 유식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유식이도 그 때부터 이미 뒷다리를 저는 증상이 시작됐었습니다. 척추 디스크가 신경을 눌러 걸음걸이가 나빠지는 현상은 사육 상태의 대형 육식동물에서 흔한 일입니다. 사육상태에서는 야생에서보다 훨씬 오래 살고, 근육을 쓸 일이 적어서 그렇습니다.
⠀
증상이 심했던 보금이는 2021년 7월에 안락사 되었고, 유식이는 그 때부터 허리와 다리의 통증을 덜기 위한 약을 먹었습니다. 다른 곰에 비해 유난히 약을 잘 골라냈던 유식이에게 약을 먹이기 위해서 치열하게 머리 싸움을 했더랬습니다. 그렇게 유식이는 돌봄활동가들과 밀고 당기며 생의 마지막 1년은 곰 숲 산책도 하고 물놀이도 하며 지냈습니다. 다시 젊어지는 약은 아직 없고, 유식이와 우리의 시간은 빠르게 지났습니다.
⠀
2023년 6월 말, 유식이의 걸음걸이가 눈에 띄게 나빠졌습니다. 뒷다리를 끌기 시작했는데, 끌림 때문에 상처가 생기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나쁜 상황이 됩니다. 그래서 저희는 마음의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예상했던 것보다 경과가 빨리 진행되었습니다. 지난 일요일까지만 해도 겨우겨우 걷던 유식이가 월요일에는 하체를 전혀 쓸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움직일 수 없으면 바닥과 닿은 곳에 욕창이 생기고, 항문 쪽에는 구더기가 순식간에 슬기 때문에 급한 일이 되었습니다. 치료가 급한 것이 아니라 안락사가 급한 상황이었습니다. 동물권행동 카라와 곰보금자리프로젝트는 밤까지 긴급 회의를 열고 유식이를 보내주기로 결정했습니다.
⠀
마지막까지 유식이에게 나쁜 경험은 없기를 바랐습니다. 블로건의 통증을 주기 싫어서, 먹이는 진정제를 맛있는 과일에 섞어주었습니다. 와작와작 잘도 먹더니 유식이는 고요하게 잠들었고, 그제서야 주사마취가 이루어졌습니다. 의식을 완전히 잃은 후에 심장을 멈추는 약을 주사했습니다. 들 것에 다 같이 들고는 지난 해 죽은 미자르 옆에 유식이를 묻어줬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 매일 유식이를 마주하는 돌봄활동가들이 함께했습니다.
⠀
우리는 누구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유식이의 마지막 삶은 그냥저냥 괜찮았던 것 같고, 그렇게 싫어하던 약을 이제는 먹지 않아도 되고요. 허리와 다리가 아파서 끙끙대던 유식이는 이제 편안합니다. 사육곰 산업이라는 거대한 비극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희극을 찾아내려는 저희의 노력이, 유식이가 죽기 직전 주마등처럼 떠올렸을 33년의 기억에, 잠깐 웃는 마음을 얹어주었을 거라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