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선 도로 2개를 건너 녹지를 찾아갔던 북극여우, 구조 후 11일간의 기록

  •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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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1-11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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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은 어디에서 왔을까


서울 강북구의 어느 공원에 '북극여우'가 나타났습니다. 북극의 툰드라 지대에 서식하는 동물이었기에 두 눈을 의심했지만 틀림없는 북극여우였습니다. 


이곳은 동물권행동 카라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길고양이 급식소를 운영하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북극여우가 언제부터였는지 몰라도 공원을 떠돌며 고양이 사료로 연명해온듯 했습니다. 10월 30일 카라는 북극여우 구조에 나섰고 3시간을 기다린 끝에 구조에 성공했습니다. 활동가들은 북극여우에게 '닉'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구조 당시 탈수 증세를 보였던 닉은 서울시의 협조를 받아 검진과 치료가 가능한 동물병원에 입원할 수 있었습니다. 


북극에 서식하는 여우가 서울 한 복판에 나타난 까닭은 인간의 소유욕과 무책임한 호기심, 그리고 이를 조장하는 희귀/이색동물 판매업체 때문이었습니다. 국내에 난립하며 수년째 문제로 지적되어 오고 있는 야생동물 카페에서는 이른바 '교감' 행위라며 쉽게 볼 수 없는 동물들을 실내에 갖다놓고 손님을 받으며 동물 본연의 습성과는 상관 없는 방식으로 사람들이 직접 동물을 만지고 놀게 합니다. 심지어 희귀동물을 '분양' 한다며 판매까지 서슴지 않습니다.


'닉'도 이러한 업체인 '마리앤쥬'에서 수입한 북극여우였습니다. 동물을 좋아하는 보호자는 이색동물에 매료되었고 10월 6일 100만원에 약 4개월령의 수컷 여우 '닉'을 구매했습니다. 업체가 '앉아' '손' 등의 훈련이 가능하다고 안내한 만큼 보호자는 여우를 가정에서 키우는 데에 별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활동 반경이 크고 점프력이 좋으며 굴을 파는 것이 특기인 여우는 가정집에서 결코 쉽게 반려화 할 수 있는 동물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한국의 기후는 북극여우가 살기에 기본적으로 적합하지 않습니다. 


보호자는 북극여우를 길들이려 애썼지만 만지는 것조차 힘들었습니다. 집 안에서 헐떡이는 것이 안쓰러워 마당에 내놓았던 어느날 '닉'은 탈출하고 말았습니다. 닉이 탈출한 것이 10월 19일의 일이었으며 닉이 보호자와 기거한 지 고작 13일 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나중에 알려졌지만 이것은 짧았던 동거기간에도 닉의 '두번째 가출'이었다고 합니다.      


닉의 ‘집’으로부터 닉이 구조된 녹지는 4차선 도로 2개와 복잡한 민가를 지나야 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제 겨우 5개월령인 어린 여우 ‘닉’은 두 번째 탈출에서 용케 로드킬을 피하여 인근의 녹지까지 다다랐습니다. 도시의 온갖 개와 고양이, 다른 동물들, 특히 사람들로부터 감염될 수 있는 무수한 병원균과 바이러스 그리고 낯선 환경이 주는 스트레스에 의한 질병 발현과 죽음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닉은 구조되기까지 열흘 이상을 홀로 살아 남았습니다. 



‘북극 여우’ 한국에서 보호하기


1. 야생동물이면서 토종동물이 아닌 북극 여우. 보호 주체는 어디인가?


안타깝게도 북극여우는 멸종위기종이 아니기 때문에 생태적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개나 고양이와 같이 ‘유실 또는 유기’동물로 취급되어 시보호소에 보내져야 합니다. 대부분의 동물보호소가 홍역이나 파보바이러스에 오염되어 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여우는 개로부터 전염병에 감염될 수 있는 동물입니다. 홍역에 특히 취약하고 파보나 광견병도 문제였습니다. 특히나 ‘닉’은 어린 연령인데다 예방접종 등 히스토리를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닉’의 최초 상태는 탈수에 다리를 절고 있었으며 길고양이 봉사자의 먹이를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눈에 잘 띄는 동물이 공원에 나타나기까지 누구라도 ‘동물유기’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비록 ‘닉’을 찾기 위한 신고나 전단지 등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을지언정 ‘닉’이 유실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습니다. 


카라는 지자체와 지역 환경청 양쪽으로 다 연락을 넣었습니다. 충남야생동물보호센터를 관할하는 금강청, 한강청, 서울동물원 등등 북극여우 ‘닉’을 어디서 도와줄 수 있을지 급히 수소문했습니다. 느닷 없는 북극여우 구조 소식에 두 행정기관 모두 난감해 하며 서로 업무를 미루며 시간이 지체되었고 결국 '유실/유기동물'에 준하여 지자체에서 11월 6일 뒤늦게 공고가 올라갔습니다. 해당 동물을 보호하고 있으니 보호자는 11월 18일까지 찾아가라는 내용이었습니다. 


2. 오염된 유기동물보호소... ‘닉’을 치료하고 안전하게 보호할 곳은 어디인가? 


‘닉’은 야생동물로서 치료를 받으면서도 법적으로 유기동물 공고가 되어야 했습니다. 이대로 유기동물보호소로 보내지면 각종 질병에 이환될 위험에다 절고 있는 다리의 치료도 불가능했습니다. 하여 카라는 ‘닉’이 야생동물인 만큼 야생동물보호시설과 전문 수의사의 도움을 받으며 안전을 확보한 상태에서 공고를 할 수 있도록 백방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런 노력 끝에 닉은 CT 촬영 등 적절한 검사와 치료 그리고 탈수 교정을 받을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다른 동물들로부터의 질병 감염을 막기 위한 격리 시설에서 안전하게 보호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유기동물들이 받지 못하는 특별한 지원을 서울시와 카라의 연계에 의해 받게 되어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야생 북극여우이지만 수입 매매되어 누군가의 소유물인 ‘닉’


11월 2일 카라는 SNS에 북극여우 '닉'의 구조 소식을 알렸습니다. 그런데 3일 밤 '닉'의 보호자 라고 주장하시는 분이 카라로 처음 연락을 취하셨고 닉을 돌려 받고 싶다고 했습니다.

 

당연히 정말 소유자가 맞는지 확인이 필요했고 따라서 추가 정보를 요청 했습니다. 그리고 소유자라는 것이 확인된다면, 북극여우가 반려화 하기 어려운 동물인 만큼 진짜 보호자일 경우에라도 보호자를 직접 만나 북극여우를 키우게 된 경위를 확인하고 이후 닉의 복지에 대한 책임을 주지시켜야 하는 의무가 있었습니다. 


11/3 보호자라 주장하시는 분이 연락을 주시기 시작한 이래 카라는 11/4 메일 답변에 이어, 11/5 전화, 11/7 전화, 11/8 전화로 그분과 거의 매일 소통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어떠한 점이 확인이 필요한지, 법적으로 필요한 과정 등을 안내하였습니다. 그러나 보호자는 하루에도 수차례 카라로 연락하며 '카라가 연락을 무시한다, 여우를 돌려달라'며 재촉했습니다. 


한편 카라에 의해 구조된 닉은 그 시각 서울대 동물병원에 입원중이었습니다. 예방접종 여부도 모르고 다른 감염병 여부도 몰라 다른 동물들과 완전히 격리된 격리실에 입원중이던 닉에게는 많은 의료진의 손길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초기 탈수와 설사 증세는 다행히 진정되었으나 병원의 CT 촬영 결과 어깨 탈골이 관찰되어 앞으로도 계속 이에 대한 주의가 요청되었습니다.


※ 모든 유기동물은 시보호소 보호동물로 지정되면 보호 비용과 치료비가 법적으로 발생합니다. 원 소유자가 나타나면 이를 지불하는 것은 서울시 조례 및 동물보호법에 따르는 것일 뿐이며, 이 비용은 동물단체가 아닌 '지자체'에 지불하는 것입니다.


4. ‘닉’의 소유권자와의 만남


카라는 11월 9일 닉의 보호자를 만났습니다. 보호자 집 위치와 닉이 발견된 장소, 잃어버린 북극여우의 사진과 영상, 보호자와 마리앤쥬간의 거래 내역 등을 통해 닉이 보호자가 잃어버린 북극여우 임이 최종 확인된 것입니다.  


보호자는 기니피그, 햄스터, 페럿, 개 등 여러 동물을 사육하고 있었으며, 여우의 복지를 위해서는 역부족인 환경이었습니다. 여우를 데려갈 이동장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로 하네스로 차를 태우려고 준비중이었습니다. 대폭 개선 조치를 하지 않으면 또다시 유실 우려가 있어 보였습니다. 카라는 보호자 분에게 주어진 조건에서 여우를 위해 가능한 개선 사항들을 알려 드렸고, 이종의 동물들을 임의 합사하지 말 것을 당부 드렸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야생동물은 설사 개량된 종이라 할지라도 습성을 충족시키기 어렵고 다양한 질병에 감염될 수 있으며, 그만큼 일반 가정에서 반려하기에 부적합한 동물임을 설명 드렸습니다. 보호자는 환경 개선을 약속 했고 이후 닉은 퇴원하여 결국 보호자분에게 돌아갔습니다. 


5. 4차선 도로 2개 건너 녹지로 간 ‘닉’을 다시 시멘트 ‘집’으로 돌려보내며


닉은 최초 탈출 후 쉽게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다시 탈출해서는 용케 이 삭막한 도시의 작은 산을 찾아가 카라에 구조되었습니다. 어리고 다리까지 저는 개체였지만 자연의 존엄한 힘이 녀석을 그리로 이끌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닉’은 이제 다시 자신이 자발적으로 찾아갔던 4차선 도로 2개 건너고 복잡한 민가들을 거쳐 갔던 녹지를 떠나 다시 시멘트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반려동물의 정의가 뭐냐? 혹자는 묻습니다. 한국의 현행 법제 상으로 반려동물은 개, 고양이, 토끼, 페럿, 기니피그, 햄스터 등입니다. 물론 절대적 기준은 아닙니다. 때로는 야생동물 임에도 불구하고 야생으로 영영 돌아갈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어 반려동물의 연을 맺게 되기도 하고, 농장동물과도 산업적 이해가 아닌 정서적으로 특별한 유대관계를 맺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든 사람의 이해나 만족을 위하여 지금 동물의 상황을 악화시켜서는 안됩니다. 특히 상업적 목적으로 야생동물을 수입하여 아무 규제 없이 판매하거나 번식시키는 일은 금지되어야 마땅하며 국회에도 무분별한 야생동물의 거래를 막는 법안이 상정되어 있습니다.       


희귀동물을 일반 가정에서 구입하여 키우는 것은 소유욕을 부추겨 희귀동물의 보전을 저해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무분별한 소유욕으로 많은 동물들을 잃었습니다. 동물의 습성을 존중해주며 서식지를 보전하는 것이야 말로 희귀동물을 보호하는 일입니다. '종보전'은 개인이 가정집 거실의 유리관속에서 ‘애호’ 하는 마음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상업적 이득을 위해 매매업을 하는 분들의 홍보 도구로 인용될 말은 더더욱 아닙니다. 종보전은 국가적 과제로 계획을 수립하고 이에 따라 과학적으로 수행되어야 합니다. 이땅의 토종 여우도 멸종된 마당에 북극여우를 마구 수입해 키우고, 이런 행위를 두고 종보전에 기여한다는 망발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카라는 귀여운 동물의 외모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야생동물 반려화를 조장하는 이색동물 판매업체가 가장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법이 야생동물 종의 거래를 허용하고 있다기보다 멸종위기종이나 환경부령의 야생동물이 아닌 한 뚜렷한 규제가 없는 현행법상 '사각지대' 라고 보는 편이 더 적합합니다. 


카라는 야생동물 카페 금지 그리고 야생동물의 무분별한 거래를 방지하는 법제 강화에 힘쓰며, 이번에 닉을 판매한 업체나 그에 준하는 업체에 대해서도 응당의 책임을 묻는 활동들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한편 닉이 또다시 유실되지 않기를 바라며 환경 개선 이행을 모니터 하겠습니다. 


드넓은 설원에서 새하얀 보호색을 뽐내며 사냥을 하며 살아갔을 ‘닉’과 같은 북극여우들. 모피용으로 개인 소장용 매매용으로 팔려와 이제 자연에서 분리되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처지가 되어 버린 안타까운 존재들. 그들의 가까운 선대의 집이 북극이듯, ‘닉’과 비슷한 처지의 동물들의 원래의 ‘집’도 북극입니다.


이 아름다운 동물들의 삶에 인간들이 저지른 많은 해악들에 가슴깊이 미안함을 느끼며 ‘현재의 법체계’와 ‘국가적 야생동물 보호 역량’으로는 여기까지 밖에 더 도와줄 수 없어 정말 미안합니다.  

 

※ 카라는 이번에 '스웨덴/노르웨이 북극여우 보전팀'에서 활동하시는 전문가 분의 도움을 크게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닉’ 구조기 다시 보기 > 도심 속 공원에 나타난 북극여우, “닉” https://www.ekara.org/activity/wild/read/12209







▲ 치료 및 관리가 필요한 닉의 관절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