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칩이 있는 채로 길생활을 하다 병에 걸린 '너굴'

  •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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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5-19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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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에게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삶'이 아닌 치열한 '생존'입니다.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위기의 동물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신 분들의 구조 사연을 공유합니다.




[구조사연]

저희는 이제 막 두 고양이를 키운 지 1년 정도 된 신혼부부입니다. 구조한 '너굴'이는 2020년 12월에 처음으로 길에서 만났습니다. 그때 눈에 눈곱이 가득 껴 있어서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해 이름을 '너굴'이라 지어줬어요.

너굴이는 건사료를 잘 먹지 못했습니다. 확연히 아파하며 삼키는 모습이 보였어요. 만날 때마다 습식 캔을 까주었습니다. 게 눈 감추듯이 한 캔을 다 먹었구요, 물도 한 그릇 꿀꺽 잘 먹어치웠습니다. 그런데 그게 전부였어요. 저희를 만나는 날은 밥 먹는 날이고, 못 만나는 날은 굶는 날이 되었지요. 

그래서일까요. 너굴이는 동네 카센터 옆에 있는 작은 도랑에서 매일 저희를 기다렸습니다. 영화 10도로 떨어지는 날에도, 바보같이 움직이지도 않고 그 자리에 있었어요. 사람 손을 유난히 잘 탔고, 가까이 가도 도망은커녕 움직이지도 않았지요. 저러다 밟히면 어떡하나 걱정까지 했어요. 올 겨울 그 강추위 속에서도 너굴이는 그렇게 자리를 지키고 제가 주는 밥을 받아먹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그렇게 살다 가는 게 너굴이의 운명이겠거니 하고 어쩌면 너무 무심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밥을 먹고 한참 동안 저희의 손길을 기다리가다, 떠나가는 저희의 뒷모습을 아련히 바라보고 있던 그 모습이, 이제는 머릿속에 콱 박혀서 큰 죄책감으로 남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너굴이 상태가 평소보다 많이 심각한 걸 깨달았습니다. 삶의 의지를 놓아버린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그제서야 뭔가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더군요. 너굴이가 없으면 저희 인생이 너무 공허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급히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치료 및 진료과정]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놀라운 결과가 나왔어요. 너굴이 몸 속에 마이크로 칩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해당 번호로 등록된 정보는 없었어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너굴이의 특성과 연관지어 생각해볼 때, 예전에 사람 손을 탔다가 유기된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너굴이가 길에서 보냈던 시간들은 이전엔 경험해보지 못했던 고난의 시간이었겠지요. 

진단 결과 구내염이 너무 심해 전발치가 필요하다는 판정을 받고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입양에 대한 결심과 확신은 없었어요. 집에 있는 아이들과 싸우게 되진 않을까 걱정도 많았구요. 아이도 없는 신혼부부가 셋째를 들이는 선택은 정말 너무 어려웠습니다. 어른들의 반대도 매우 컸구요.

어쨌든 너굴이는 그렇게 힘든 투병을 시작했습니다. 이를 다 뽑고 항생제 치료를 받으면서, 눈곱도 조금씩 없어졌어요. 이제 퇴원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온몸에 털이 빠지는 게 수상해 검사를 해봤더니, 링웜 곰팡이 바이러스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추가 입원이 결정되었지요.

이 착한 아이가 왜 이렇게까지 고통스럽게 지내야되는 걸까 의문이 생기더군요. 그리고 저희는 이 아이를 길로 다시 돌려보낼 자신이 없어졌어요. 저희 가족으로 품기로 결심했습니다. 늦은 결심이었기에 후회도 컸습니다. 진작 데려올 걸. 그 추웠던 겨울, 조금이라도 빨리 데려왔으면 이빨 한두 개라도 건질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도 많이 후회가 되네요. 



[앞으로의 진료 및 보호 계획]

앞으로 너굴이에게 행복한 인생만 주려고 합니다. 저는 이미 제 남은 인생을 고양이를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했구요. 저는 10년 안에 정원이 딸린 고양이 집을 지어서, 우리 아이들과 동네냥이들을 다 거두면서 사는 게 목표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부지런히 모아야겠지요. 그래도 절실하면 다 이뤄주실 거라 믿습니다. 

치료비를 가능하면 제가 다 감당해보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엄청난 금액이 나와버렸네요. 그래서 염치불구하고 이렇게 지원을 요청드리게 되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도와주실 수 있다면 정말 감사할 것 같아요. 물론 저 역시 앞으로 계속 후원하며 다른 분들을 도와드리고 싶고요. 

모쪼록 앞으로도 너굴이의 행복한 묘생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퇴원 후 소식]

너굴이는 링웜 치료 경과 확인을 위해 본가에서 조금 떨어진 조카 집에서 임보를 시작했고, 조금씩 마음을 열며 적응중입니다.조카네 식구들이 너굴이를 너무 좋아하기 시작해서 어쩌면 저희집에 오기 전에 조카네 집에서 새로운 묘생을 시작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느 쪽이든, 너굴이에게 필요한 모든 지원은 저희가 끝까지 다 하기로 약속한 상황이니 걱정 안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집에서 키우는 아이들도 너무 사랑스럽지만, 거리의 아이들도 다 하나 같이 마음으로 품어주고 싶은 제 새끼들처럼 느껴집니다.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앞으로 저희 부부가 할 수 있을 때까지 정말 최선을 다해 돌봐주겠습니다. 아울러 카라와 후원자님들의 따뜻한 마음도 잊지 않고, 더 많은 분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저희도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힘겨운 겨울을 보낸 너굴이에게 사랑 가득한 가족이 생겼네요. 구내염과 링웜 치료도 무사히 잘 받고, 너굴이 특유의 친화력으로 임시보호 하던 분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다시 반려묘가 된 너굴이가 이제는 꽃길만 걷기를 바랍니다. 너굴이가 새로운 묘생을 살아가게 해주신 구조자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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