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뼈와 송곳니 골절로 입에서 피를 뿜어내던 길고양이 '동석이'

  •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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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8-08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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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석이는 작년 4월 말경 제가 당시 살던 아파트 화단에 갑자기 나타난 아이입니다.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약한 구내염 증상이 있어 약을 먹이며 1년가량을 보살펴 왔습니다. 절대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오거나 치대지 않아 만져본 적은 없지만, 밥을 챙기고 있으면 어느새 소리 없이 나타나 대여섯 발자국 떨어진 곳에 앉아서 얌전히 기다리던 과묵한 아이. 가리는 것 없이 주는 대로 잘 먹고, 만족하면 또 소리 없이 다른 곳으로 가 버리곤 했습니다. 얼굴이 듬직하고 덩치도 큰 그 아이에게 저는 (마)동석이라는 이름을 붙여 줬습니다.

그러던 중 밥을 주러 들렀는데, 밥그릇에 시뻘건 것이 잔뜩 묻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밥을 먹다가 흘린 피라고 하기엔 양이 너무 많고, 또 색깔도 선명한 장밋빛이었습니다. 저와 번갈아 그 자리 아이들을 챙기는 다른 캣맘들은 동석이는 요즘 낮엔 나들이를 하러 가는지 없지만, 밤마다 제집에서 잘 자고 있고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며, 달리 피를 흘리는 아이를 본 적도 없다고 합니다.


그렇게 답답한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동석이를 만난 저는, 그 피의 주인공이 역시나 동석이임을 알게 됐습니다. 제가 접시에 놓아 준 캔을 먹는데 먹을수록 캔에 피가 묻는 겁니다. 그건 묻는 게 아니라 뿜어져 나온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적지 않은 양이었습니다. 구조하기 위해 포획틀을 빌렸고 일정치 않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오는 동석이를 포획틀만 놓고 기다리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두어 시간 대치하다가 플라스틱 덫의 문이 닫혀 있어 안을 들여다보니 기다리고 기다리던 동석이 녀석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마음속으로 기쁨의 함성을 지르며 얼른 사진을 찍고 병원으로 내달렸습니다. 구내염이니까 이를 뽑으면 낫겠거니 싶어, 그간 챙기던 아이들을 여럿 발치시켰던 동물병원으로 데려갔습니다. 다음날 오후 병원에서 다급히 전화가 옵니다. 밥을 먹으려 할 때마다 입에서 피가 터지듯이 나와서 피검사를 진행한 결과 빈혈 수치가 14 정도로 매우 낮았고, 엑스레이를 찍어 보니 아래턱이 골절되어 있다고 내일 바로 큰 병원으로 옮겨서 수혈과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다음날 동석이를 인계받아 큰 동물병원으로 또 달렸습니다.


동석이가 밤새 수혈을 잘 받았고 저녁때 밥을 줘보니 먹겠다는 의지를 보이는데, 조금만 먹어도 또 피를 흘렸다고 전해 주셨습니다. 대신 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수치라는 것이 전날보다 두 배 정도 늘어서 희망적이라고 하였습니다. CT로 보니 턱뼈가 부러진 채로 이미 굳은 것으로 추정되며 못해도 5주 이상 된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외상에 의한 것일 수도 있지만 아마도 이 상태가 나빠짐에 따라 자연스럽게 점차 어긋나가다 작은 충격에 그렇게 됐을 수 있다고 합니다. 출혈 원인은 오른쪽 아래 송곳니라서 턱뼈가 완전히 골절된 시기와 심한 출혈이 시작된 시기는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가 다 녹아 없어져 뿌리만 있고 그마저도 뽑을 필요도 없이 떠내면 떼어질 정도로 잇몸 위에 그냥 얹어져 있던 수준이었고 이가 부러졌으면 단면이라도 보이고 신경도 보여야 하는데, 동석이의 이는 이미 텅텅 비어 있었답니다. 오른쪽 아래 송곳니가 잘못 부러져 주변을 자극하면서 계속 피를 쏟는 것으로 추정됐고,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피가 퐁퐁 솟아오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부분을 잘 정리하고 존재의 의미조차 없는 나머지 이들은 전부 발치 후 봉합하여 마무리했다고 합니다. 수술을 마친 동석이는 지친 듯했지만, 이제 더 이상 피도 나지 않고 기운도 생겨서인지 기분 탓이겠지만 조금은 편안해 보였습니다.


처음 온 날은 바늘을 찔러도 아무 반응도 못 할 정도로 힘이 없던 아이가, 이젠 밥 더 달라고 쩌렁쩌렁 울기까지 한다니 참 고맙고 귀여웠습니다. 동석이는 병원을 옮겨 치료를 더 받고 퇴원했습니다. 함께 원래 살던 장소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아이는 오랜만에 보는 바깥 풍경이 좋았는지, 자기가 입원해 있는 동안 가득 핀 꽃들이 신기했는지 눈을 크게 뜨며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얘가 이렇게 눈이 크고 맑은 아이였구나.. 길에서 봤을 땐 눈이 비교적 작은 아이라 생각했는데, 건강을 되찾은 너는 눈도 예쁜 초록색으로 반짝거리고 코도 예쁜 분홍색이었구나.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원래 살던 자리에 오자 같이 지내던 다른 아이와 서로 경계를 하며 으르렁대더니 주변 냄새를 맡으며 탐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돌고 돌아와서 차려주는 밥을 한 그릇 비우고는, 핏자국을 다 지우고 새 담요를 깐 자기 집에서 익숙한 듯 쉬는 동석이. 그 후로도 저는 변함없이 이틀에 한 번씩 예전 동네에 아이들을 챙기러 가고, 그 아파트에 사는 고마운 취준생 캣맘은 매일같이 동석이와 아파트 아이들을 챙기며 저에게 시시콜콜 안부를 전해 줍니다.


여전히 동석이는 나들이를 좋아해서 요즘 많이 바쁜지 자리에 있는 적이 잘 없습니다. 그러나 밥을 차리고 있으면 어느새 소리 없이 나타나 멀찍한 곳에 떨어져 앉아서 조용히 밥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람을 좋아하는 아이들처럼 티 나게 반겨주는 일은 결코 없지만, 멀찍이 앉아 은근히 지켜보고 있는 그 묵직한 모습이 참 귀엽습니다. 그리고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는 말을 몸소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누구보다 열심히 또 많이 잘 먹습니다. 하마처럼 입을 크게 벌려서 포크레인처럼 밥을 떠먹는 모습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지만, 동석이는 잘 지내고 있고 앞으로도 아파트 캣맘과 함께 아이가 더 아프거나 다치지 않도록 잘 돌보려고 합니다.


길 위에서 죽음을 맞이할 뻔했던 동석이를 구조해  꾸준히 돌보며 치료해주신 구조자분께 감사드립니다.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를 흘리면서도 밥을 먹을려는 의지를 보여주며 그동안 잘 버텨준 동석이가 참 대견합니다. 더 늦지않게 구조해주신 덕분에 동석이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다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치료 잘받고 다시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간 동석이가 구조자님의 정성어린 돌봄을 받으며 더 이상 아프지 않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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