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내려섰지만 움직이지 못하던 개, ‘설희’

  •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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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5-03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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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파주에 소재한 개 농장에서 만난 설희는 분변이 가득 쌓인 녹슨 뜬 장안에서도 눈부시게 빛이 나던 개였습니다. 낯선 활동가들을 경계하며 큰소리로 짖거나 뜬 장 구석으로 숨어들던 개들과 달리 조용히 웅크리고 앉아있던 설희는 구조를 위해 활동가가 뜬 장 앞으로 다가가 손을 내밀자 조용히 다가와 활동가의 손을 핥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쓰다듬어 주는 활동가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꼬리를 흔들며 반가움을 표시했습니다.











활동가들은 이런 설희가 언제부터 이곳 뜬 장에 갇혀 지내게 되었는지, 무슨 이유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혹시나 가족으로부터 유기된 것은 아닌지 동물등록 칩 삽입 여부를 확인해 보았으나 설희의 몸에는 어떠한 기록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마을을 떠돌거나 버려진 개들을 데려왔다는 농장주의 설명으로 한때 누군가의 가족이었다가 버려진 것으로 추측할 뿐이었습니다.



뜬 장안으로 들어가 전염병 키트 검사, 채혈 등 기초적인 검사를 진행하고, 뜬 장 밖으로 안겨 나오는 동안에도 설희는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경계하지 않았고 조금 긴장한 표정으로 낯선 장면과 사람들을 바라보면서도 연신 꼬리를 흔들었습니다. 설희는 2살 추정의 어린 암컷이었습니다.





수십 년간 잔혹한 도살이 행해지던 개 농장을 완전히 벗어난 설희는 혹시 모를 전염병 잠복기에 대비하여 임시로 격리 기간을 보내게 될 카라 위탁처에 도착하였습니다. 활동가의 품에 안겨 밝게 빛나는 햇살과 푸르게 펼쳐진 잔디밭을 바라보는 설희의 표정에는 여전히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고, 순식간에 변한 자신의 상황에 어리둥절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그런 설희를 안심시키며 조심스럽게 잔디밭 위에 내려주었지만, 설희는 한동안 한 걸음도 내딛지 못했습니다. 땅에 발이 붙은 것처럼 우두커니 서 있는 설희에게 손을 내밀며 “걸어볼까?”라고 연신 이야기를 건넸습니다. 혹시라도 땅 위에서 걷는 법을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가슴이 철렁했지만, 다행히 흙냄새와 풀냄새를 맡으며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습니다.








설희가 마지막으로 땅을 밟고 흙냄새를 맡았던 것은 언제였을까요.  설희는 풀냄새를 맡으며 어떤 기억을 떠올렸을까요.


여느 개들처럼, 잔디밭을 신나게 달리고 그 위로 뒹굴며 행복해하는 설희를 보며,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식용 개 농장’에 갇혀 있던 설희의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오버랩되었습니다. 이날 개 농장에서 구조되지 않았다면 설희는 마을을 떠도는 개장수 트럭으로부터, 자가 번식으로 인한 강제 임신과 출산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뜬 장 위에서 생을 마감했을 것입니다.


이날 구조된 개의 대다수가 1살~2살가량의 어린 개였지만 11마리 중 9마리가 심장사상충에 감염된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태어난 후 계속 방치되어 살다 도살장으로 보내졌거나, 혹은 뜬 장에서만 살아왔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어린 개들에게 사람에게 사랑받아본 시간이 있기는 했을까요? 앞으로 펼쳐질 시간은 더 이상의 유기나 방치, 학대 없이 오롯이 사랑과 보살핌으로 가득한 삶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 어린 개들이 힘든 치료를 무사히 이겨내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많은 분의 관심과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설희를 비롯한 11마리의 개들에 대한 소식은 지속해서 들려드리겠습니다.

[ 설희 영상 보기 : https://blog.naver.com/animalkara/222719594441]


 - 구조된 개들은 치료를 마친 후 새로운 가족을 만나게 됩니다.

 - 동물권행동 카라는 물리적 경제적 이유로 살처분(안락사) 하지 않는 시민단체입니다.

 - 해당 개 도살장은 완전히 철거되었으며, 이곳에 더 이상의 죽음은 없습니다.

 정기후원 - https://www.ekara.org/support/regul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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