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내염에 걸린채로 가족에게 버림받은 유기묘 '이슬이'

  •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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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2-15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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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구에 사는 고양이 돌보미입니다. 길고양이들의 삶과 생에 동질감을 느껴 아이들을 돌본지 5년  가 되어 갑니다. 제가 돌보는 애들의 밥자리는 열악한 편입니다. 재래시장 인근에 고령자가 많이 사는 곳이다 보니 밥그릇이 사라지고 엎어지는 일이 매일 같이 일어납니다. 자리를 옮기어도 구석으로 들어가도 매일이 같은 날의 반복입니다. 어떤 날은 너무 속이 상하고 기분이 나빠서 내가 왜 이러고 사나 싶기도 합니다.

저의 개인적인 사정상 비 오거나 눈이 오는 날은 우산에 밥 가방까지 동시에 모든 것을 하기 힘이 들지만 한결같이 그 모든 날 저를 기다리는 애들이 있어서 오로지 저를 만나려고만 기다리는 그 아이들의 눈빛이 아른거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오늘도 엎어질지 모르는 밥을 챙기러 갑니다.

이슬이는 언제나처럼 아이들을 밥을 챙기러 간 날 갑작스럽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늘 같은 애들만 만나는 제 밥자리에 우연히 새로운 아이가 나타났습니다. 처음엔 새로운 아이가 아니라 원래 있는 아이인 줄 알았습니다. 원래 밥자리 아이들이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젖소, 턱시도 아이들이 많았던지라 이슬이도 비슷한 코트를 하고 있어 저희 아이인 줄 알고 불렀는데 뭔가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다가오지는 않지만 피하지도 않기에 가까이서 본 이슬이는 몸이 미용이 되어 있었습니다. 재개발이 확정된 재래시장엔 한두 가구씩 이사를 나가는 모습이 보였고 아마도 이슬이는 이사를 나가는 가정에서 유기하여 떠난 것이 아닐까 추측되었습니다.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이 들어 그날 밤 sns나 포인핸드, 고양이 카페 등을 찾아보았으나 올라온 흔적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고령자 인구가 많은 곳이라 제발 주인을 잃어버린 것이었으면 하는 마음에 전단지를 열심히 붙이러 다녔지만, 그 고양이 주인집은 이사 간 집이라는 대답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전단지를 붙이러 다니는 며칠 사이 이슬이는 꼬박꼬박 찾아왔습니다. 가족들이 너를 모두 떠났지만, 넉살은 참 좋은 아이로구나 기특하기도 했습니다. 먹다가도 터줏대감 아이들이 나타나면 놀라서 도망을 가기는 하였지만, 제가 오면 어디에 숨어 있다가 밥을 얻어먹기 위해 나와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슬이가 밥을 먹는 모습이 이상했습니다.

건사료를 잘 안 먹고 간식을 잘 먹길래 맛있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건사료가 맛이 덜해서 안 먹는 게 아니라 건사료를 씹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왜 못 먹나 싶어서 핸드폰 후레쉬를 켜고 이슬이를 보니 건사료를 입에 넣지만 안에서 무언가 걸리는지 굉장히 고통스럽게 다시 내뱉어 내는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집에 구조하여 반려 중인 아이 비빔이도 구내염으로 전체 발치를 하여서 알 수 있었습니다. 이슬이도 구내염이라는 것을요. 그 이후로 며칠 이슬이가 밥을 먹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혈액이 잔뜩 섞인 침을 내뱉는가 하면 아주 혼탁한 침도 잔뜩 흘렸습니다. 좋아지게 해주려고 약을 섞으면 그나마 잘 먹던 간식을 입도 대지 않았습니다.

가족에게 버림받아 떠돌아다니는 아이, 아파서 버림받았구나. 미용이 되어있었던 것은 그 침으로 그루밍한 털이 보기 싫어서구나. 온갖 상상이 다 되었습니다. 그냥 지켜보기엔 너무나 딱하고 아픈 아이였습니다.

저 혼자서는 불편하여 주변 캣맘의 도움을 받아 이슬이를 구조하기로 하였습니다. 겁이 많아서 덫에 들어갈까 걱정됐지만 고맙게도 이슬이는 빨리 들어가 주었습니다. 밤늦게 구조하여 하룻밤 저희 집에서 재우고.. 다음날인 8월 27일 이슬이를 집에서 멀지 않은 거리의 동물병원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검사 결과 이슬이의 병명은 고양이 만성 구내염 그리고 다수의 치아 골절과 치수염이 보였고 치아 흡수성 병변도 함께 가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진행된 지는 아주 오래된 것 같다고 하시고 어린 시절부터 치아 관리를 전혀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하셨습니다. 전체 발치를 하여야겠으나 그간의 오랜 진행으로 인해 잔존하게 되는 구내염 병변은 약물을 먹으면서 치료 관리를 해주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치아 촬영으로 마취가 된 이슬이의 치아를 의사 선생님이 보여주시는데, 아주 엉망이었습니다. 어금니는 시꺼멓게 치아의 색이 보이지도 않고 잇몸은 다 녹아내린 애처럼 흐물흐물한 것이 이슬이의 전발치를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바로 이슬이의 전체 발치 수술이 진행되었고, 이슬이는 무사히 수술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이슬이를 만난 첫 순간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제가 낯설어 무섭지만, 배가 고파 다가온 그 모습과 그 눈빛. 그 순간부터 저는 이슬이를 도와주고만 싶었습니다. 하지만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이슬이의 앞날을 함께 걸어주려고 합니다. 이슬이는 퇴원 후 저희 집으로 오게 되었고, 수술 부위도 잘 아물고 있습니다.

이슬이는 저희집 비빔이랑 트러블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수술 전에 먹고 자고 싸고 가만히 있던 이슬이가 지금은 180도 바뀐 모습이에요. 장난도 치고 뛰어도 다니고 밥도 너무 잘 먹고 수술 전에 손을 입주위에 조금만 닿아도 승질내고 물려고 했던 이슬이 모습과는 전혀 달라요.^^ 구내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저희집 비빔이를 통해 알게됬고 앞으로 비빔이 이슬이 잘 보살피겠습니다. 치료비 지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길고양이들도 잘 보살피겠습니다.^^


거리에서 죽음을 맞이할 뻔했던 이슬이를 구조해 꾸준히 돌보며 치료해주신 구조자분께 감사드립니다. 치료를 잘 받고 다시는 버려지지 않을 평생가족을 만난 이슬이가 반려묘로서 행복한 묘생을 보내기를 늘 바라겠습니다.



*이슬이의 치료비는 '삼성카드 열린나눔'에서 지원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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