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정의 노령견과 함께 하는 삶] 하나. 정하와 해리의 이야기

  •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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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7-22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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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정의 노령견과 함께 하는 삶 



하나. 정하와 해리의 이야기



박희정

동물권연구활동모임 프로젝트 "A" 칼럼니스트


 


 

“해리와 함께 보낸 시간을 통해 내가 더 나은 인간이 됐어.

그리고 해리도 이제는 더 행복해 보여. 그래서 나도 좋아.”

 

 


첫 만남

 

해리를 처음 만난 건 2003년 5월 4일이었어. 따스한 봄바람에 마음이 들뜨는… 그래, 외출하기 딱 좋은 날이었지. 밤 11시쯤인가, 아무튼 늦은 밤이었어. 그 때 내 나이는 서른. 스물아홉에 결혼하고 그 이듬해의 일이야.

 

남편이랑 언니가 신당동에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는 거야. 웬 떡볶이? 뭐, 그래, 가자가자 하면서 나갔어. 그 당시 언니는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언니가 매일 노래를 부르는 거야. “너 결혼하면 강아지 키울 것 같았는데, 강아지 안 키워?” 언니는 개를 무척 키우고 싶어 했거든.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항상 개를 키웠어. 남편도 개를 좋아해. 나보다도 훨씬. 둘이 모종의 이야기를 나눈 거지. ‘쟤가 싫다고 하지만 막상 보면 달라질 거다.’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는 건 핑계였던 거야. 우리 집에서 신당동을 가려면 충무로를 지나야 하니까.

 

지금은 형부가 된 언니의 남자친구까지 합세해 등을 떠미는 바람에 할 수없이 충무로 애견샵을 도는 처지가 되었어. 저것 봐. 아유, 너무 예쁘다. 세 사람이 흥분해서는 연신 귀여운 강아지들을 가리키며 품에 안아보라 성화를 했지. 몰라, 나는 안보여. 나는 개 안 키워. 단호하게 외면하며 팔짱을 끼고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어. 판매하는 사람들이 자꾸 나한테 “안아보세요” 하는데도 난 안지 않았거든. 내 피부에 개 체온이 닿는 순간 끝장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한 열 집은 돌아보았나. 피곤이 밀려오더라고. 마지막 집에 들어갔는데, 이제 곧 가겠구나 하는 기대감에 잠시 경계가 느슨해졌어. 그 때 갑자기 언니가 자그마한 비글 한 마리를 데려다 안긴 거야. 얼결에 받아들었는데, 그 때 나를 올려다보는, 작고 예쁜 눈동자가 내 눈에 들어왔어.

 

안고 있은 지 2, 3분이나 되었을까. 그 잠깐의 시간동안 느낀 따스한 체온, 마른 몸의 감촉, 그리고 그 눈빛…….

 

내 마음이 무너진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남편은 바로 지갑을 꺼내들었어. 순간 정신이 퍼뜩 들었지. 아니야! 난 강아지 안 키운다고. 끝까지 책임지지 못할 거면 안 기를 거야. 난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나는 황급히 가게를 돌아 나왔고, 우리는 신당동으로 향했어. 그런데 이미 나의 온 생각과 마음은 그 작은 비글에게로 쏠린 상태였지. 떡볶이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겠더라고.

 

자꾸 생각났어. 비글은 인기 있는 견종이 아닌데… 몸집도 커지고……. 보니까 그 애가 또 되게 말랐어. 얼핏 봤지만 한 달도 채 안 돼 보였어. 그런데 가게 아저씨는 2개월 됐다고 속여서 팔고 있는 거야. 굶은 티도 확 났어. 아마 밥을 안줬겠지. 팔려면 몸집이 커지면 안 되니까. 이미 그때 나는 그런 사실들을 알고 있는 상태였으니까 강아지를 안았을 때 너무 말라서 갈비뼈가 만져지는 그 느낌이… 나한테는 너무 컸던 거야.

 

집에 가서도 잠이 오지 않았어. 저렇게 있다가 팔리지 않으면 폐기처분 될 게 뻔한 인기 없고 약한 강아지. 하필이면 다음 날은 어린이날이었어. 미치겠더라고. 아빠 나 강아지 한 마리 사줘! 하는 말에 수많은 동물들이 팔려갔다 버려지는 그 시즌이잖아. 그 아이는 그렇게 팔려갔다 버려지거나 죽을 거 같았어.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다음날 아침 7시쯤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졌어. 걔를 데리고 오면 죽을 때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키워야 해. 현실적으로 나 할 수 있어? 내 지금 상태로? 정말 망설여졌지만 그래도 마지막에는 데려와야겠다는 결심이 섰어. 아침 8시 반에 애견샵에 전화를 하고 미친 듯이 달려갔지.

 

‘해피’들의 죽음

 

내가 개를 안 키우려고 했던 이유가 있어. 우리 집은 어렸을 때부터 개를 계속 키웠다고 했잖아. 해피 원, 투, 쓰리로 이름 붙여지는 개를 거의 열 마리는 키운 거 같아.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부터 항상 개가 있었어. 그 개들의 끝이 모두 좋지 않았어. 어느 날 학교를 갔다 오면 엄마가 개장수한테 팔아버리고 난 뒤인 거야. 내가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무력감이 평생 나를 짓눌렀어. 네다섯 살부터 대학 때까지 그런 일이 계속되었다고 생각해봐. 나는 미쳐버리는 줄 알았거든.

 

아빠도 개를 좋아하니까 계속 데려왔던 건데 직장을 다니시니까 휴일에만 예뻐하는 식이었지. 일반적인 어른들보다는 신사적이고 괜찮은 사람이지만 개를 키우는 데 있어서는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방식을 취했어. 그래서 내가 조금 자라면서는 그런 것에 대해서 격렬하게 저항했어. 그러면 혼나는 거야. 닥치고 있어! 그렇잖아도 속상해죽겠는데 그만 얘기해! 이런 식으로. 개들의 죽음에 대해 내 마음대로 슬퍼할 수도 없었고, 화를 낼 수도 없었어.

 

마지막으로 푸들 두 마리를 키웠어. 아버지와 아들 개였지. 우리 언니 중학교 입학 선물로 아빠가 사준 개가 나중에 새끼를 받아서 두 마리가 된 거였어. 둘 다 내가 스물한 살, 대학교 3학년 때 죽었어. 제일 견딜 수 없었던 죽음이었지. 이전의 다른 개들은 마당에서 길렀는데, 이 두 마리는 처음으로 집안에서 키운 개들이었고, 나와 좀 더 많은 교감을 나눴어. 아빠개가 당시 열두 살이었는데 당뇨가 생겨서 청력과 시력을 다 잃은 상태였어. 상태가 심각했지. 어느 날 학교 갔다 오니까 이 개가 없어진 거야.

 

아빠 말로는 상황이 안 좋으니까 안락사를 시켰대. 그래, 그럴 수 있어. 그런데 내가 참을 수 없었던 건 걔가 늘 다니던 병원도 아니고 한 두 번이나 갔을까 하는 낯선 병원에, 그것도 아빠가 끝까지 있어준 것도 아니고 그냥 “안락사 시켜주세요.” 말하고 버리고 와버렸다는 사실이었어. 그 애는 특히나 안에 사람이 들어있을 거야 싶을 정도로 온화하고 범상치 않은 기운이 있는 개였어. 그런 개는 평생 없을 거야 생각할 정도로. 그 애가 마지막에 자신이 버려진 상황과 자기에게 다가올 죽음을 다 받아들이고 체념하고 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미치겠는 거야. 얼마나 두려움을 느꼈겠어.

 

그때 나는 스물 한 살이었으니 성인이었고, 무기력한 아이의 처지를 조금은 벗어났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부모님의 처사에 좀 더 세게 저항했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아빠가 원래 화를 내는 분이 아닌데 너무 화를 내시면서 시끄럽다, 그만 얘기하라고 하시는 거야. 차라리 한마디라도 ‘나도 너무 마음이 아프다’ 하셨으면 그런 감정까지는 안 들었을 거 같은데 정말 엄마 아빠 두 분 다 너무 싫었어.

 

엄마는 지저분해지는 걸 너무 싫어하는 성격이었어. 강박증에 가까울 정도로 결벽증. 개가 집에서 죽어가면서 피를 흘리고 냄새나는 게 싫었던 거야. 그리고 사람들 그런 거 있잖아. ‘끝’을 보기 무서우니까 피하고 싶어 하는……. 그래도 십몇 년을 키운 갠데 어떻게 그렇게 버릴 수가 있어.

 

그러고 나서 부모님은 석 달인가 있다가 아들 개도 안락사를 시켜버렸어. 이름이 돌돌이였는데, 돌돌이는 멀쩡한 개였거든. 아픈데도 없었어. 나이는 열 살 정도. ‘한 마리 치우고 나니까 얘도 저렇게 해서 죽을 거니 애초에 싹을 잘라버려야 된다’는 생각이 드셨다나봐. 너무 어이가 없었어.

 

그 이후로 나는 마음을 닫아버렸어. 지나가면서 개들을 보면 너무 귀엽다, 우리 돌돌이 생각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절대 개는 키우지 않겠어.’ 다짐하게 되는 거야. 상처가 너무 오래 갔어. 그렇게 마지막 개를 보내고 십년이 지난 즈음에도 내 마음이 열리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그런 상태에서 해리를 데리고 온 거야. 뭔가 만회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 개고기로 팔려간 수많은 해피들과 외롭게 죽어간 개들에게 속죄하고 싶은 마음. 그것 때문에 해리를 데려왔던 것 같아.

 

관계의 시작

 

우습게도, 깊이 생각하고 결정했지만 해리를 데리고 오는 차 안에서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어. 너무 우는 거야. 비글 목소리가 장난 아니게 크거든. 그 때부터 ‘현실’이 들어오는 거지. 9년 가까이 개를 키우지 않다가 갑자기 같이 살게 되니까 털 빠지는 것도 너무 싫고, 특유의 체취도 싫은 거야. 나 큰일 났구나, 그 생각이 덜컥 들더라고. 괜히 데려왔다는 생각을 강아지가 느끼게 하기 싫어서 며칠간은 거의 눈을 마주치지 않았던 것 같아.

 

게다가 얘가 둘째 날부터 아프네. 병원에 갔더니 파보장염일 수도 있다 뭐 일수도 있다 온갖 얘기를 하는데, 충무로에서 데려왔다는 이야기를 듣더니 더 이상 진료를 안 해주려고 해. 그냥 무조건 도로 갖다 주던지 다른 개랑 바꿔 오래. 너무 당연하게 그렇게 얘기하는 거야. 바꿔오던지 아니면 얘 죽을 거니까 그냥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시라고. 검사 받는 것도 결과 나오려면 며칠이 걸리는데 그 사이에 얘가 죽을 거니 의미가 없다는 거야. 돈만 깨지는 거라고.

 

집에 데려와서 북어라도 끓여서 먹였지. 다행히 식욕이 있더라고. 어렸을 때부터 키웠던 경험으로 미루어보면 식욕이 있으면 개를 살릴 수 있으니까 계속 먹였어. 설사도 하고 기침도 하고, 한 2주일을 앓았던 것 같아. 밤이면 깨서 울어. 그때는 얘랑 나랑 아무런 교감이 없고, 만난 지 며칠 안 되는 상황이니까 내가 걔한테 아무런 의지가 안 되는 거야. 지금은 얘가 아프거나 하면 나를 의지하잖아. 내가 옆에 있으면 진정을 하고. 그 때는 내가 마루에 나가면 외려 빽빽거리고 우는 거야. 그러니까 더 괴로운 거지. 왜 그러니, 어디가 아픈 거니… 어쩔 줄 모르겠으니 그냥 옆에 주저앉아 울면서 이야기하고 그랬어.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가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얘가 나를 의지해서 울음을 그치는 거야. 거기서부터 시작이 된 거 같아. 우리의 관계는.

 

차차 병을 이겨내는 게 보이고, 보름정도 되니까 얘는 이제 산 거 같다는 느낌이 오더라고. 그래서 다 나았나보다 했는데 갑자기 배가 불룩해지기 시작했어. 마치 복수가 차는 것처럼. 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복수까지는 아닌데 위험한 상황이라고 하더라고.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 게, 별다른 처치도 받지 못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그냥 배 쓸어주고, 좋다는 거 먹이고, 새벽에 아파하는 거 같으면 그냥 같이 버텼어.

 

불룩한 배가 가라앉고, 이제는 완전히 컨디션이 돌아온 거 같았어. 사람이 간사한 게 그 전에 해리가 죽을 고비를 넘길 때는 그냥 얘가 살아만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어. 그래도 이렇게 데려와서 처참하게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내가 거둬줄 수도 있게 되니 다행이다. 그런 별의별 생각을 다 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얘가 다 나은 것 같으니까 그 다음부터는 아주 실질적인 문제들이 보이는 거지.

 

일단 분리불안이 심각했어. 내가 어딜 나가면 계속 울어. 나갈 수가 없는 거야. 내 일상이 타격을 받게 되니 스트레스가 쌓여갔지. 어릴 때 집에서 키우던 개들은 사실 내가 백퍼센트 책임지는 개는 아니었던 거잖아. 어른들이 돌보고 우리는 예뻐하고. 그런데 처음으로 내가 온전히 돌보는 개가 생기니까 이건 완전히 다른 차원인 거야. 나의 대단한 착각이었지.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데 나 따위가 뭐라고 ‘내가 한 생명을 책임질 수 있어!’ 이러고 데려온 거잖아. 내 발로 가서 내가 데려온 거니 누굴 탓할 수 있겠어. 힘들 때마다 꼴좋다고 생각했어.

 

공부를 시작했어. 분리불안은 무엇이며 어떻게 해결해야하는지에 대해. 배운 대로 하나씩 해보니 분리불안도 점차 나아지더라고. 예를 들어 한 달 정도 매일 5분씩 10분씩 점점 시간을 늘려가며 나갔다들어오기를 하는 거야. 어떨 때는 시간을 뒤죽박죽으로 섞기도 하면서. 나갈 때는 꼭 해리가 제일 좋아하는 걸 주고. 계속 하다보니까 나중에는 내가 나가거나 말거나 해리가 전혀 신경을 안 쓰더라고.

 

처음에는 굉장히 스트레스였어. 어느 순간부터 내가 사람을 만나지 않는 거야. 가뜩이나 사람을 많이 만나면서 배워야 될 게 많은 나이였는데, 자꾸 집안으로 들어와 있는 거야. 주변에서도 이상하게 보지. 그때는 분리불안 문제가 해결이 되어야지 내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주변에서 아쉬운 소리를 들어도 포기할 수가 없었어.

 

“너, 왜 무는 거니?”

 

간신히 분리불안을 해결하고 나니까 이번에는 해리가 이갈이를 시작하고 무는 버릇이 나오는 거야. 유난히 다른 개들보다 심하게 무는 거 같았어. 얘가 원래 이렇게 사나웠나? 새끼 때는 안 그랬는데. 그때가 해리 나이 4, 5개월 정도 되었을 때야.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해리는 처음부터 사람이 들어 올려 안거나 만지는 거에 대한 반감이 컸어. 보통 강아지들은 안아주면 좋아하잖아. 얘는 조그마했을 때도 자기가 힘이 없으니까 표현을 그렇게 밖에 못한 것뿐이지 격렬하게 저항을 했어. 신기하게도 내가 해리를 처음 보던 날 안겼을 때는 너무 얌전하게 있었는데, 그 때 딱 한번뿐이었지.

 

집에 와서는 안을 때마다 버둥대니까 내가 얘를 뭔가 불편하게 안나보다 생각하고 크게 신경을 안 썼어. 그런데 해리가 어느 정도 몸집이 커지니까 버둥거림이 더 격렬하게 느껴지잖아. 이상하다 생각 했지. 그때부터 무는 버릇이 시작됐어. 갑자기 버럭 화를 내고, 만지는 것도 싫어하고. 만져주면 좋아하다가 어느 순간 돌변해서 ‘왕!’ 물어.

 

처음 물렸을 때는 정말 큰 배신감이 들었지. 신세한탄까지 나올 정도로. 이렇게 무는 개가 정상인가. 나는 왜 이런 개를 키우고 있어야 하지. 이러면 나는 너랑 못살아! 몸과 마음의 상처가 주는 타격은 엄청났던 것 같아. 물리고 나면 무서워. 이가 크니까 스치기만 해도 찢어지잖아.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몸이 안 좋아서 그랬던 것 같아. 보통 결석이 나이 들어야 생기는 질환이라고 하는데 해리는 생후 5개월 정도부터 결석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이 돼. 선천적으로 유전병처럼 그런 게 있는 아이. 결석이 그렇게 심하게 생기는 어미 개들은 새끼를 못 낳게 한다고 해. 그런데 종견장에서는 그런 것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공장처럼 개들에게 새끼를 뽑게 하잖아. 해리는 그런 출신이었던 것 같아.

 

해리가 결석 때문에 아파지면서 더 많이 힘들었어. 관리를 해줘야 하는데 약물로 안 되는 결석도 있고, 수술을 해줘야 할 때도 있고. 또 통증이 항상 있으니까 더 예민해지고……. 개들은 자기가 불편하다는 걸 표현하는 게 무는 거잖아. 그 무는 버릇을 고치기 위해 시중에 나와 있는 일반적인 훈육매뉴얼을 따르다 초반에는 시행착오를 크게 겪었어.

 

시중에 보면 개를 잘 훈육시키는 방법에 대한 책들이 많잖아. 나는 해리를 잘 키우고 싶었으니까 그런 방법들을 찾아보고 따르려고 했어. 거기서 이야기하는 것들이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어. 보통은 그러잖아. 주인과의 서열관계를 정리해줘야 한다고. 개들을 복종시키고, 말 안 들으면 코 빵빵 때려야 되고. 그대로 시도 했는데 해리의 버릇이 더 안 좋아진 거야. 그래서 지금 내 손은 흉터투성이야.

 

해리가 충무로 애견샵에 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와서 괴롭혔겠어. 잠들만하면 와서 귀엽다고 주무르고……. 사람 손을 당연히 싫어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 몸이 아픈 개라 뭐든 게 얘한테 너무 큰 자극이었던 것 아니었을까. 내가 어렸을 때 겪었던 일들이 오래 남아 나를 힘들게 했듯이, 얘도 어렸을 때의 기억이 남아 힘들었겠지.

 

그 와중에 내가 기름을 부은 격이지. 이상한 방법을 쓰면서 호되게 하고,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대결을 했으니까. 내가 폭군처럼 폭력을 행사한 거지. 정서적으로든 때려서든. 그때는 해리도 어렸으니까 얘가 두려워하면서 끝난 거야. 지금 같았으면 엄청 덤볐을지도 몰라. 얼마나 불쌍한 거야. 해리는 내가 자기보다 힘이 세니까 기가 눌려서 그렇게 했지만 얼마나 나에 대한 불신이 생겼겠어. 나는 그것도 모르고 ‘내가 이겼고 주인으로서 권위가 생겼다’라는 착각을 한 거지.

 

개와 산책을 할 때 개가 주인보다 앞서면 안 된다고도 하잖아. 옆으로 서게 해야 한다고. 책에서는 그것도 주인의 권위에 도전하는 거라서 서열 관계를 지켜줘야 한다고 읽었어. 그런데 지금 보면 누가 앞서가는 게 중요하지 않아. 개들은 그만큼 집밖으로 나올 기회가 없어서 작은 거에도 흥분하는 것뿐이야. 개들이 원할 때 보고 냄새 맡고 원하고 싶은 만큼 하게 해주잖아? 그러면 자기 스스로 안정이 돼. 그렇게 충분히 시간을 주고 어느 정도 진정이 되면 그 다음부턴 자연스럽게 같이 걸을 수 있거든.

 

사람이든 동물이든 어떠어떠하다고 단정 지어서 말한다는 자체가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해. 얄팍한 정보를 보고 전부라고 믿는 거, 그 당시 자기 판단이 전부라고 착각하는 건 정말 위험해. 조금 더 여유와 인내심을 가지고 한 박자 천천히 했으면 나도 그렇게까지 안했을 거 같아. 나는 마음이 급했던 거야. 뭐든지 초장에 잡아야 한다고들 하니까. 그것도 잘못된 정보지. 사람이든 동물이든 어렸을 때 경험이 정말 큰데, 오히려 더 신중해야 하는 거잖아. 그런데 그때는 그걸 몰랐어.

 

내가 해리랑 오랫동안 있어보니까 사람이랑 별반 다를 바 없어. 정서적인 부분이나 교감을 나누는 것이. 벌어지는 일의 의미도 다 알고, 옛날 일도 다 기억하고, 내 분위기도 감지하고……. 내가 사과를 먹을까 하고 떠올리면 해리가 알아. 오랫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일상을 공유하잖아. 그러면서 삶의 패턴이 같아지잖아. 그래서 내가 뭔가 먹고 싶어지거나 하면 해리도 아는 거야. 함께 시간을 보내면 상대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생기는데, 그런 게 없는 상태에서 무조건 빨리 훈육해야 한다는 게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봐.

사람과 마찬가지로 개와도 신뢰가 깨지면 너무 힘들어지는 거 같아. 나도 한번 물렸기 때문에 신뢰가 깨져서 겁이 나는 거잖아. 그러면 이런 감정을 서로 주고받아. 내가 공포를 느끼면 해리도 긴장하고. 누가 먼저 시작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주고받기 시작하면 같이 가는 거니까.

 

“제압이 아니라 진정이 필요해”

 

결석이 많이 생기는 개들은 몸 안에서 칼슘이나 인이 많이 빠져나가는 거야. 이런 것들이 비정상적으로 많이 배출돼 뭉쳐지는 게 결석이잖아. 가만히 보니까 그래서 해리가 치아도 약한 거야. 처음에는 몰랐어. 간식은 잘 안주는 편이었는데 개 껌은 줬거든. 어느 순간 얘가 껌을 씹다가 움찔하는 거야. 잘 못 먹고 아파하는 느낌이 들더라고. 병원에서 보니까 어금니가 세로로 쫙 갈라졌어. 그래서 발치 수술을 했고, 이후에 치아 상태를 살펴봐야 하는데 입 쪽을 만지면 너무 싫어하고 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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