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산불 피해동물 1차 긴급구호

  •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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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4-12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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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67

※ 주의, 타 죽은 사체 사진은 전부 제외했으나 잔인한 사진이 있습니다.






1. 고성의 지금, 그리고 치료지원


카라 활동가들과 의료진은 강원도 고성을 방문했습니다. 화재로 큰 피해를 입은 용촌리, 인흥리, 봉포리, 성천리, 원암리 등 고성 전체를 구석구석 돌며 도움이 필요한 동물들을 만났습니다.


여전히 탄내가 나고 까맣게 그을린 마을 속, 동물들도 산불의 여파를 고스란히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반려인이 목줄을 풀고 대피소로 간 덕에 목숨을 부지하고 다시 불이 꺼진 집으로 돌아온 개들도 많았고, 짧은 목줄에 묶여 있었으나 두어 걸음 차이로 화마(火災)를 면한 개들도 있었습니다. 까맣게 타죽은 개들도, 털이 조금 그을린 개들도 있었습니다.





농장동물들의 사정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한 농장의 염소들은 보살핌을 받지 못해 굶주린 듯 했습니다. 닭들은 피할 데가 없어 꽁지깃이나 벼슬이 타기도 했습니다. 열 마리의 닭을 키웠는데, 아홉은 죽고 한 마리만 살아남았다는 집도 있었습니다. 어린 닭들은 저들끼리 모여 무언가를 쪼아먹어 사료를 부어주었습니다. 연기에 그을려 까매진 길고양이들은 이따금씩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많은 소들이 타죽었습니다.


| 벼슬과 깃털이 까맣게 탄 닭들.




열 마리 닭들을 키우던 집, 모두 죽고 한 마리의 닭만 살아남았다. 닭은 리어카로 만든 임시거처에서 돌봄을 받고 있다.


만나는 동물마다 사연이 깊습니다. 네 마리 개를 길렀던 할머니는 산불이 들이닥치자 한 몸 추슬러 도망가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돌아오고 나서는 까맣게 타죽은 세 마리 개를 보았고, 살아남아 꼬리를 흔드는 남은 한 마리 개들을 보며 가슴을 치며 울었다고요. 옆집 개가 항생제 주사를 맞고 삐지는 동안, 할머니의 개는 주사를 맞거나말거나 그저 기뻐 엉덩이춤을 출 뿐이었습니다.

대피소로 간 이웃을 대신해 어린 백구들을 돌보는 집도 있었고, 반려견의 화상치료 후 소독약을 얻어 많이 기뻐하던 할머니도 계셨습니다. 갑작스레 들이닥친 재난 속에서도 살아남은 이들의 삶은 어떻게든 계속됩니다. 



2. 피해동물을 위한 사료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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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는 고성으로 500kg의 사료를 싣고 달렸습니다. 만나는 동물 모두에게 사료를 전달했습니다. 다행히도 동물들은 이웃들 등이 끼니는 꼬박꼬박 챙겨서 배 곯는 일은 없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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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시골개들이 으레 그렇듯 대부분 짬밥이나 식은 밥이 개들의 식사였습니다. 사료 지원으로 인해 반려견에게 사료를 처음 먹여보는 집이 많았습니다. 당장 오늘 말고도 이후로도 계속 사람 밥 대신 사료 챙겨주시라고 사료를 몇 포대 쌓아놓았는데요, 마을 어르신들은 "이렇게 좋은 밥은 애들한테 처음 먹여본다"고 하시기도 했습니다. 지금 사료를 먹여보는 경험이 이후의 일상으로 쭉 이어지기를 부탁드렸습니다.




굶주린 듯한 흑염소들. 양배추를 던져주자 허겁지겁 배를 채웠다.


대피하며 목줄을 풀어놓은 개들이 많다고 합니다. 집으로 돌아와 가족을 기다리고 있던 견공도 있었지만 아직 돌아오지 않은 반려견들도 있다고 해서, 그 개들이 먹을 수 있을까 싶어 이따금 길 위에 사료를 부어놓기도 했습니다. 배가 고픈 듯한 흑염소들에게도 양배추를 던져주었고요. 후유증과 트라우마가 걱정되는데 모두들 무사히 이 시기를 잘 견뎠으면 좋겠습니다.




만나는 동물들에게 사료를 지원한 후 남은 몫은 경동대학교 체육관에 쌓아놓았습니다. 그 곳에는 전국에서 보내는 구호물품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도와주시는 자원봉사자 분들, 그리고 군인들 덕분에 수월하게 사료를 옮길 수 있었습니다. 체육관 한 구석에 고양이 사료와 개 사료를 나누어 쌓았습니다. 이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이 곳에 신청해서 사료를 배급받으면 된다고 합니다.

카라 활동가들도 따뜻한 한 끼 식사를 지원받았습니다. 근처 순두부 가게에서 점심식사를 했는데요, 감사하게도 사장님께서 '도와주러 오신 분들이니 식사비를 받을 수 없다'고 해주셨습니다. 덕분에 힘을 내서 사료를 나를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성 현장에서 피해를 입은 주민들을 위해 발 바쁘게 뛰고 있는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동물을 위해서도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시는 모습에 세상이 이렇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자원봉사자, 군인, 담당 공무원 등을 비롯한 현장에 계신 모든 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산불을 피해 떠나며 급하게 반려견의 목줄을 풀어준 흔적. 가족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개를 하루하루 기다리고 있다.


3. “달몽아, 서울가서 치료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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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로 피해 입은 동물들 소식에 시민분들이 “목줄이라도 풀어주지..”라고 안타까워하십니다. 정말로 재난시 동물들은 보호의 사각지대에 있습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미쳐 날뛰는 불길 속에 당황한 분들, 외부에서 대피하는 등 전혀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분들, 목줄을 풀어 준 뒤 사라진 반려견 때문에 눈물짓는 분들 또한 많았습니다. 대피소에는 불길을 보고 반려견만 안고 무조건 뛰었다는 분도 계십니다.




달몽이는 짧은 목줄에 묶여서 피난길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기적적으로 딱 개집 뒤까지만 타서 죽음의 화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화상과 열기로 피부가 그을리고 눈을 아파했지만 치료만 하면 완쾌할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달몽이는 집 옆에 있는 외양간에서 살던 다섯 마리의 소들이 불에 타 죽는 것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이제 곧 새끼를 낳을 산모 소가 불길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달몽이는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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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살이 훌쩍 넘은 애교쟁이 달몽이는 치료 내내 수의사 선생님들을 핥기 위해 안간힘이었습니다. 짧은 줄에 매어놓고 키웠을지언정, 달몽이의 가족들은 나름대로 이 애에게 애정을 많이 쏟았구나 싶었습니다. 마을 개들의 이름은 다들 흰둥이나 누렁이 등이었는데 '달몽이'라는 예쁜 이름도 있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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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는 처음에는 혹시 카라에서 애를 데려가 줄 수 없겠느냐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달몽이의 치료를 마치고 사료를 많이 드리자 다시 달몽이를 잘 키워보겠다고, 약이나 좀 많이 주고 가시라고 마음을 바꾸셨습니다. 생업을 다 잃은 망연자실함 속에서 어떻게 하면 달몽이가 가장 좋을지 혼란스러워하시는 듯 했습니다. 우선 카라가 달몽이를 데려가 잘 치료하고, 필요한 처치를 하고 돌려보내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 도착 직후의 달몽이. 털을 밀어보니 생각보다 화상이 더 심해 입원치료 중이다.


카라 활동가들이 달몽이를 서울로 데려오는 3시간동안 녀석은 아주 얌전히 켄넬에 앉아 있었습니다. 먹었던 짬밥을 다 토하면서요. 화상 치료를 하는 김에 아저씨의 동의를 얻어 중성화 수술과 접종까지 다 끝낼 예정입니다. 달몽이를 다시 가족 곁으로 돌려보내는 그 날에는 짧은 목줄이 아니라 뛰어놀 수 있는 넓은 공간을 마련할 수 있도록, 짬밥이 아닌 식사를 할 수 있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④ 어미 소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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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몽이네 아저씨네는 대여섯 마리의 소를 기르는 것을 생업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소를 길러 필요한 곳에 갖다 파는 것이 그들의 일이었습니다. 소들은 가족들에게 생업의 수단이면서 어쩔 수 없이 정을 주게 되는 존재이기도 했습니다. 가족은 매정해야 하는 대상이며 연민을 갖게 되는, 복합적이고 이중적인 마음으로 늘 소를 돌봤을 것입니다. 세상을 그저 흑백으로 가를 수 없는 것처럼요.

달몽이네서 카라 활동가들은 산불에 불타는 외양간을 탈출한 어미 소가 고꾸라진 듯 눈도 감지 못하고 죽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산불이 났을 때 다른 소들은 모두 타 죽었지만, 곧 출산 할 예정이었던 어미 소는 사투 끝에 큰 화상을 입은 채 탈출에 성공하여 살아남았습니다. 등 뒤와 코에 입은 상처가 당시 상황을 짐작하게 해 줍니다. 뱃 속 새끼에 대한 집념, 생존에 대한 욕구가 어미 소의 탈출을 가능하게 했을 것입니다.




그런 어미 소가 죽은 것입니다. 목은 기괴하게 꺾여 있었고, 어미 소는 죽기 전 하혈을 한 듯 했습니다. 하혈은 어미소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새끼의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달몽이네 아저씨가 불로 다 타고 남은 것이 없는 상황에서 여기저기를 뒤져 어미 소를 덮을 비닐을 구해 오셨습니다. 카라 활동가들은 아저씨와 함께 어미소를 덮어 주었습니다. 더 빨리 왔더라면 어쩌면 뱃속의 새끼만큼은 살려보려고 노력은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마음 아픈 후회가 남습니다.


소들을 다 떠나보낸 아저씨는 집 앞을 눈도 못 뜨고 지나간다고 했습니다. 산불의 공포, 소들의 죽음이 깊은 자상을 남겼습니다. 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달몽이를 위험에 처하게 한 것이 단지 달몽이 아저씨네 때문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반려견을 비롯한 동물에 대한 몰이해와, 동물을 소홀히 하는 재난 대피 시스템, 그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얽혀 어미소의 비극을 만들었습니다.

어미 소가 죽은 그 집에서 달몽이네 아저씨네 가족은 살아가야 합니다. 카라는 달몽이가 고성 산불에서 살아남은 증인으로 다시 이곳 분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달몽이를 통해 시골분들이 개를 어떻게 키워야하는지 설득하는 데 이어, 재난 속에서도 농장동물이 안전할 수 있도록 공장식 축산을 계속 반대하며 농장동물 보호를 위한 매뉴얼을 마련할 수 있도록 정부에 촉구하겠습니다.

어미소의 명복을 가슴 깊이 빕니다. 여러분들께 오늘 하루만이라도 어미소, 그리고 동물들의 고통을 헤아려 채식을 실천해 주실 것을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누군가에게는 고기였지만 죽은 어미 소는 온 몸이 타면서도 지키고자 했던 ‘새끼’였으니까요.




카라는 다시 현장으로 떠납니다. 도움이 필요한 동물들을 전범위적으로 돕기 위해 논의를 이어가는 중입니다. 다시 소식 전달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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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 없는 재난 속에서 동물과 함께 살아남기 위한 국가 대응체계 마련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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