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자의 사망으로 다시 길 위로 방사되어 병을 얻은 '반갑이'

  •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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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2-23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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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에게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삶'이 아닌 치열한 '생존'입니다.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위기의 동물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신 분들의 구조 사연을 공유합니다.





[구조사연]

저는 마을 길냥이들을 돌보고 있는 캣맘입니다. 2014년에 이사를 왔는데, 원래는 제 옆집에 사시던 분이 캣맘이셨고 그 분이 임신한 문희를 구조해서 댁에서 출산시켜주고 임보 중이었는데요, 한 달 후에 그분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게 되면서 문희와 아가들이 갑자기 다시 길 위로 방사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제가 그때부터 문희와 아가들을 돌보게 되었고, 한옥마을 고양이들 밥을 챙기게 되었습니다.

반갑이는 그때 태어난 문희의 5남매 중 한 아이입니다. 5남매 중 둘은 3년 전에 고양이별로 갔고 이제 3남매가 길에 남아 함께 지내고 있었는데요, 반갑이는 굉장히 소심한 아이여서 매일 만나도 절대 앞으로 나서지 않고 늘 가장 뒤에 숨어서 바라보다가 밥을 먹던 아이였어요. 몇 년을 밥을 챙겨주고 5남매 모두 TNR을 시켜주기도하며 험한 길생활이지만 건강하게 잘 지내주고 있었는데, 2021년 초부터 밥자리에 오지 않고 다른 고양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것 같아 보였어요. 가끔 나타나면 늘 혼자 멀찍이 앉아서 밥을 먹으러 오지도 않고 침을 흘리고 털이 뭉치기 시작했어요. 구내염인 것 같아서 병원에서 약을 타서 만날 때마다 먹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겨울부터 침이 늘 입가에 얼어있고 땅에 닿을 정도로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늘 구조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손도 안 타고 겁도 많고 병원비 걱정에 구조를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결국 이번 달에 구조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이러다 다른 형제들처럼 고양이별로 떠나버릴 것 같아서 도저히 두고볼 수가 없었습니다. 구조를 결심한 날 정말 운이 좋게 밥자리에서 반갑이를 마주쳤습니다. 집에 바로 달려가서 포획틀을 가져와 설치했고 반갑이가 평소 좋아하던 파우치를 넣어주고 30분을 기다린 뒤에 반갑이가 순순히 포획틀로 들어가주었습니다





[치료 및 진료과정]

포획틀에 들어가 준 반갑이를 얼른 담요로 덮어서 집으로 데려와서 네트망을 엮어서 설치한 공간에서 하루 재우고 다음날 근처 동물병원으로 데려갔습니다. 길고양이 구내염 수술을 종종 하시는 선생님인데도 반갑이 상태가 어떻게 이렇게 심할 수 있냐고 많이 놀라고 속상해 하셨습니다. 그동안 이런 저런 이유로 차일피일 구조를 미루었던게 정말 미안했습니다. 선생님께서 반갑이의 앞으로의 삶의 질을 위해서 송곳니만큼은 남기고 발치를 진행해자고 하셔서, 송곳니를 제외한 전발치 수술을 입원 다음날 진행하였습니다. 며칠간 입원을 하면서 병원에서 케어를 받았고 생각보다 편안하게 입원 생활을 하며 밥도 잘 먹어주어서 빠르게 회복이 된 것 같아 다행입니다.



[앞으로의 진료 및 치료 후 보호 계획]

선생님께서 전발치는 이후 케어가 중요하다고 강조하시기도 했고 오랜 기간 정든 반갑이를 이 추운 계절에 다시 방사할 수 없기 때문에 퇴원 후 저희 집으로 데려와서 약을 먹이며 케어하고 있습니다.  몇 달 동안은 약을 먹이고 따뜻한 곳에서 지내면서 면역력을 높일 수 있도록 집중케어해주려 합니다. 밥도 너무 잘 먹어주고, 집에 냥이들이 네 마리가 있는데 경계도 하지 않고 너무 조용하고 편안하게 자기도 하고 잘 지내주고 있습니다.  매일 약도 두 번씩 먹이고 있는데 잘 받아먹어주고 있고요.

저희 집이 좁아서 반갑이에게 미안하지만 천천히 친해지면서 적응하는 것을 지켜보고 반갑이가 괜찮다면 저희 집에서 언제까지고 함께하려고 합니다. 더 이상 춥고 척박한 길로 반갑이를 돌려보낼 수 없으니까요. 반갑이의 남은 묘생은 부디 편안하고 배고프지 않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최근 소식]

반갑이는 제가 6년째 밥을 챙겨주고 있지만 정말 표정이 없는 아이입니다.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아픈지 편안한지 알기가 어려웠죠. 늘 뒤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 있었고 아주 겁도 많고 소심한 아이여서 구내염이그렇게 심할 거라고는 정말 생각지도 않았어요. 원래 덩치도 있고 밥도 잘 먹어서 형제들 중 제일 건강할거라 생각했는데 언제부턴가 걷잡을 수 없이 건강이 나빠지고... 더 빨리 구조해 주지 못해서 늘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카라의 도움으로 이렇게 치료 받을 수 있어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병원에서 발치 수술 후 저희 집에서 케어받으며 따뜻하게 지내고 있는 요즘의 반갑이는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수술 후 입이 불편할텐데도 밥도 잘 먹고 약도 잘 먹고 지내며 표정이 눈에 띄게 편안하고 환해졌어요. 초반에 집냥이들과 격리를 위해 설치한 케이지에서 생활했는데, 문을 열어줘도 한동안은 케이지에서 안 나오더니, 이제 케이지에서 나와서 저희 집 냥이들과 마주쳐도 놀라지 않고 자기 갈 길 가고 화장실 가고~ 모든 생활에 자신감이 생긴 것 같습니다.

앞으로 더 좋아지고 건강해질거라 생각합니다. 반갑이가 남은 생을 편히 잘 지낼 수 있도록 제가 정성껏 돌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반갑이의 눈빛이 많이 좋아진 걸 보면 밥은 역시 '집밥'이 최고인가봅니다. 무리에 잘 섞이지 못하고, 소심한 아이니 길 생활이 더 힘들었을 반갑이가 아프지 않다는 것도 기쁘지만, 자신감이 생겼다는 소식도 못지 않게 기쁘네요. 이제 뒤에 숨어 밥을 먹는 소심냥이가 아니라 당당하게 제 몫을 챙기는 집냥이가 된 반갑이와 오래오래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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