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산 티켓이 야생코끼리를 노린다”

  • 카라
  • |
  • 2012-12-03 12:51
  • |
  • 4158
지난 11월 상처받은 코끼리들을 보호하는 시설 코끼리자연공원의 설립자 렉씨가 한국을 방문하셨었습니다. 초청 강연 중 태국에서 관광산업으로 고통받는 코끼리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며 이후 코끼리 공연으로 잘 알려진 제주도의 점보빌리지를 함께 방문하는 일정을 갖았습니다.
아래는 제주도 방문 중 함께 동행한 최우리 기자의 쇼에 이용되는 코끼리에 대한 기사 입니다.

 

 
 

[토요판 생명] ‘코끼리엄마’ 렉이 본 제주의 쇼

고향을 떠난 것은 코끼리만이 아니었습니다. 코끼리가 살던 삼림지역에 살던 청년들은 코끼리 조련사가 되어 제주도에 왔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했음직한 나이의 여동생과 오빠가 이곳에서 함께 돈을 법니다. 이들은 숙식 제공에 80만원 정도를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코끼리들만큼이나 라오스와 타이에서 온 청년들도 렉과 보와의 헤어짐을 아쉬워했습니다.
 
관광·벌목노동에 붙들리고
상아 밀거래 성행으로
야생 코끼리 멸종위기 처해 
제주도 쇼코끼리 9마리
마른 몸에 갈고리로 찔려가며
1회당 50분 공연 강행군
‘통디’가 갑자기 쓰러졌다
쇼였지만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코끼리는 바나나를 코로 받아 허겁지겁 입에 넣었다. 이어 바닥에 엎드려 있는 사람을 밟지 않고 건넜다. 마이크를 쥔 여성 사회자가 관객들을 안심시키는 듯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동남아에서는 코끼리 발이 사람의 몸에 닿으면 행운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타이에서 온 코끼리 보호운동가 생두언 차일럿(닉네임 렉·51)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전통은 없어요. 화가 난 코끼리가 사람을 밟으면… 순간이에요.”
12일 렉과 함께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의 한 코끼리 공연업체를 찾았다. 그는 타이에서 코끼리 쇼나 트레킹, 구걸을 하는 데 동원되거나 벌목 노동으로 학대받는 코끼리를 구조하는 일을 한다. 1992년부터 이동 코끼리 병원인 ‘점보 익스프레스’를 운영하며 거리의 코끼리들을 치료하는데, 어떤 때는 4000~5000달러에 불쌍한 코끼리들을 사들이기도 한다. 이렇게 구조된 코끼리 330마리는 치앙마이에 있는 2㎢ 면적의 ‘코끼리자연농원’에서 산다. 코끼리자연농원에 갔다 온 한국시각장애인예술협회와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의 공동초대로 렉과 자연농원의 홍보대사인 영화배우 벤짜시리 와타나(닉네임 보·30)가 한국에 코끼리를 보러 온 것이다.
 
제주도의 코끼리 공연업체에는 쇼를 하거나 사람을 태우고 ‘트레킹’을 하는 코끼리가 9마리 산다. 서울대공원 등 다른 동물원의 14마리를 포함하면, 국내에는 최소 20여마리의 코끼리가 사는 것으로 추산된다.
코끼리가 처음 한반도 땅을 밟은 건 1411년으로 추정된다. <조선왕조실록> 태종 11년 기록을 보면, 일본 아시카가 막부의 아시카가 요시모치가 코끼리 한 마리를 보낸다. 생전 본 적이 없는 동물을 어떻게 할지 난감해하던 조정은 병조 소속의 말 목장을 관장하던 관청 사복시에 이를 맡긴다. 하지만 2년 만에 관리들은 손을 들고 왕에게 보고를 올린다. “코끼리가 양식을 수백 석 소비합니다. 그러니 이것을 바다의 섬에 놓아 기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윽고 코끼리는 전라도 순천부 장도에 보내졌다. 하지만 이듬해 전라도 관찰사는 코끼리가 슬퍼한다는 소식을 보내온다. “코끼리가 풀을 먹지 않고 사람을 보면 눈물을 흘리고 슬피 울부짖으며 나날이 말라갑니다” 이를 불쌍히 여긴 왕이 “멀리 고국을 떠나 이향의 땅에 있는 것은 가련한 일이니 육지로 데려와서 기르도록 하라”며 코끼리를 불렀고, 그 뒤 코끼리는 따뜻한 전라·경상·충청도가 나눠 길러 10년 이상 산 것으로 전해진다.
 
제주도의 쇼 코끼리들은 타이 옆나라 라오스에서 왔다. 코끼리의 국외 반출은 세계적으로 엄격하게 통제되지만 라오스에선 제약이 덜하다. 쇼가 시작되자 전문가용 카메라로 코끼리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기록하던 렉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끔찍해요.”
 
등뼈가 드러날 만큼 코끼리들은 앙상했다. 자연상태의 코끼리는 다양한 종류의 풀과 과일, 나무껍질을 먹는다. 특히 많은 양의 무기염이 필요하기 때문에 정글에 사는 코끼리들은 진흙을 먹으며 염분을 섭취한다. 하지만 라오스에서 왔다는 젊은 조련사는 이곳의 코끼리에게 마른풀만 먹인다고 말했다.
발도 건강하지 않았다. 코끼리의 발은 수분이 충분한 땅을 걷는 데 적합하다. 반면 콘크리트 바닥은 관절에 무리를 준다. 코끼리에게 발 질환은 목숨을 앗아갈 만큼 위험해 자연농원에서는 발 전문 수의사를 따로 두기도 한다. 시끄러운 음악소리에 맞춰 우스꽝스런 동작을 하는 것도 소음을 싫어하는 코끼리에겐 스트레스다. 뭉뚝하게 잘린 상아를 보면 자신감도 잃는다.
 
렉은 모든 쇼가 그렇듯 이 업체의 조련사가 ‘불훅’(bullhook·코끼리를 길들일 때 쓰는 뾰족한 갈고리)으로 코끼리 몸을 찌르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업체 관계자는 라오스에서 순치된 코끼리를 들여왔지만 쇼를 꾸준히 하도록 간단한 훈련은 한국에서 가르친다고 말했다. 보통 항문, 귀 뒷부분 등 피부의 부드러운 부분을 찌른다. 불훅에 찔리면 감염위험이 높고 무력해진다.
 
타이의 코끼리 보호 운동가 생두언 차일럿이 10일 서울 정동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열린 코끼리에 관한 강연회에 나와 이야기하고 있다.
 
코끼리 뇌는 무게 5~6㎏으로 상당히 발달했다. 유인원, 돌고래 등과 함께 자아가 있다는 것이 증명된 코끼리들은, 암컷 중심의 집단생활을 하며 장례를 지내는 등 죽음을 애도한다. 하지만 약 2년 전에 라오스에서 제주도로 데려온 어린 코끼리(5살 추정) 세 마리는 엄마가 없었다. 2001년 들여온 어른 코끼리들도 한국에 와서 임신한 적이 없다. 덥고 습한 곳에 살던 라오스 코끼리에게 담요로 만든 겨울용 내복을 해 입힐 뿐이다.
 
.
.
중략
.
.
 
50분 동안 코끼리들은 쉬지 않고 쇼를 했다. 코로 훌라후프를 돌리고, 흰 종이에 붓으로 점을 찍고, 사람을 안마하고, 농구공을 던지고, 볼링핀을 쓰러뜨렸다. 공연의 마지막 순간 농구를 하던 코끼리 ‘통디’가 쓰러졌다. 깜짝 놀라 공연장 안으로 뛰어들려고 한 사람은 렉과 보뿐이었다. 약속된 연기였다.
렉이 말했다. “이런 쇼를 보면 동물이 나를 즐겁게 해줘야 한다는 이기심을 배울 뿐이죠. 책임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보여주지 마세요. 업자들은 우리가 지급한 돈으로 동물을 다시 사들일 겁니다.”
종일 사람을 태우고 트레킹을 하는 코끼리의 코를 렉이 쓰다듬었다. 눈 옆이 움푹 꺼진 나이 많은 코끼리도 부릅뜬 눈을 스르륵 감았다.
 
 
 
 
지난 11월 렉의 초청 강연 후기 보기: http://ekara.org/board/bbs/board.php?bo_table=community01&wr_id=724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