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아리들을 위하여

  • 박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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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7-10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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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 발생한 조류인플루엔자(Avian Influenza, AI)가 아직도 마무리가 되고 있지 않다. 그 사이에 1,400만 마리가 넘는 가금류들이 살처분되었다. 결코 적지 않은 숫자이다. 이 AI와 관련하여 방역당국은 초기부터 철새를 원인으로 지목하고 철새에 의해서 고병원성인 H5N8 바이러스가 퍼져나갔다며 철새 탓만 했다. 그런데 지금은 조만간 태풍 영향권 하에 들어간다는 한 여름이다. 이미 철새는 자기가 갈 곳으로 떠난 지 오래이다. 그런데 AI는 왜 떠나지 않고 발생하고 있는가? 이에 대해서 방역당국은 철새가 텃새화 되어 AI도 남아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살다 살다 별 희한한 이야기를 다 듣게 된다. 이런 이야기는 과학적인 검증을 받고 하는 이야기일까? 

AI의 발생과 처리 과정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무엇이 문제인지 명확하게 보이게 된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다른 생명을 오로지 돈벌이를 위해 수단시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들이다. 가금류들은 돈벌이를 위해 사육되는 것이며 그 시스템이 날이 갈수록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그리하여 오늘날은 안정적인 사업이 되었다. 그 수단 중에 하나가 법정 가축전염병의 설정이며 그에 따른 살처분이다.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또 그런 와중에 우리가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하는 사이에 죽어가고 있는 수평아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AI의 원인은 무엇인가?
현재 발생하여 진행되고 있는 AI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고병원성 으로 분류되는 H5N8형 Influenza virus이다. 이 바이러스는 어디에서 왔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 방역당국은 철새에 의해서 해외에서 유입되었다며 철새 탓을 하고 있다. 국내가 아니라 해외로 원인을 돌리려는 것이다. 방역당국은 가축전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매번 해외에서 전파 되었다고 이야기를 한다. 국내에서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애시당초 배제해버린다.
바이러스의 변이가 반드시 외국에서만 발생한다는 근거가 있는 것일까? 외국에서 바이러스의 변이가 발생할 수 있다면 국내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방역당국은 관련된 여러 가지 요소들을 고려하기 보다는 일단은 ‘남의 탓’을 하듯이 ‘철새’들에 의해서 ‘외국’에서 유입되었다고만 이야기하고 있다. 국내의 축산업체들을 보호해주려는 사려(?) 깊음이 묻어난다.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AI사태를 비롯하여 가축전염병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여러 문제점들을 내포하고 있는데 첫 번째 문제는 질병을 환원적으로 파악하는 시각이다. 이것은 오늘날 서양의학의 근본적인 한계와 맥을 같이 한다. 두 번째 문제는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와 같은 생명들과 다른 생명들의 관계를 공생명의 관계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적대적인 관계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결합하여 서양의학은 생명과 관련된 많은 문제들을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로 환원시킨다. 어떤 박테리아가 감염되어 문제이고 어떤 바이러스가 감염되어 문제라는 식이다. 하지만 생명의 모든 현상은 관계의 문제이다. 인간의 몸에는 1만 종이 넘는 박테리아가 살고 있으며 그 수는 자그마치 1조 마리 이상이다. 이러한 박테리아가 우리 몸에 있다고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박테리아의 경우 우리와 공생하는 관계를 맺고 있다. 건강한 상태에서는 이들 박테리아와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떤 요인들에 의해서 건강한 관계가 깨지면서 병을 유발하는 박테리아가 과다하게 증식하게 되며 질병이 발생되는 것이다. 닭을 비롯하여 다른 종들 또한 그러하다. 이러한 상태에서 병이 생겼다면 어떤 요인들이 건강한 관계를 깨뜨렸는지 그 원인을 찾아서 개선해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서양의학은 그 원인에는 관심이 없다. 그리고 초점은 정상적이라고 규정된 상태의 것에서 벗어난 것들을 찾아내 그것을 병의 원인으로 환원시킨다. 대표적인 대상이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또는 호르몬과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몸에서 일어난 다양한 증상을 억제하기 위해서 약물을 처방한다. 증상은 질병이 아니다. 하지만 증상을 질병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서양의학을 배운 전공자들은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증상은 생명체가 건강한 상태를 벗어났을 때 다시 건강한 상태로 돌아가기 위한 치유의 과정이다. 가령 감기에 걸렸을 때 콧물이 흐르고 기침을 하고 열이 나는 것은 모두 바이러스를 몸 밖으로 배출하고 또 몸에서 바이러스를 이겨내기 위한 과정인 것이다. 생명은 자기 자신을 치유하고 건강 상태를 유지하는 자연치유력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자연의 수많은 생명들이 건강한 상태로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모든 과정을 서양의학은 정상에서 벗어난 상태라고 보고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며 항히스타민제나 해열제 등을 사용하여 억제한다. 생명의 현상을 일정한 범위를 설정하고 그것을 생리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벗어나는 경우 병리적인 현상으로 이해한다. 일정한 범위를 벗어나서 다시 일정한 범위로 돌아오기 위한 과정 또한 생명의 현상인데 그러한 현상을 병리적인 현상으로 규정하고 억제하려고 한다. 이것은 건강이라거나 증상이라거나 하는 것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기반으로 한다. 

건강은 몸에 아무 문제가 없는 상태가 아니다. 몸에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와 같은 것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건강한 상태란 이러한 요소들이 몸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래서 건강은 고정된 상태로 있는 것이 아니라 동적인 상태에서 평형을 유지하고 있는 동적평형 상태이다. 이 평형 상태는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유지된다. 이 부분에서 또 사람들은 환경과 생명체와의 관계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 하나의 생명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 적응을 하며 오랜 시간에 걸쳐서 진화되어 왔다. 이러한 환경과의 관계는 단지 생명체가 환경에 맞추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구조접속을 한 상태로 진행되어 왔다. 그러한 구조접속의 관계를 맺으며 생명체는 자기가 처한 환경에 건강하게 살도록 진화되어 왔다. 그 환경에는 여러 요소들이 포함되는 데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와 같은 생물적인 환경도 포함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생명이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진화하여 적응하여 산다는 것은 그냥 산다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산다는 것’이다. 이 말이 중요하다. 모든 생명은 자신이 사는 환경에서 자연치유력을 갖고 건강하게 살도록 진화되어 왔다. 이것이 생명을 바라볼 때 기준이 되는 시각이 되어야 한다. 생명은 건강하게 살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기준이다. 왜 이 말을 반복하냐 하면 이 부분을 사람들이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픈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바라볼 때 ‘저 사람은 건강하게 살아야 할 사람인데 왜 아픈 것일까? 그 원인이 무엇일까?’를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왜?’ 아픈가는 생각하지 않고 원인체로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를 찾는다. 박테리아나 바이러스가 증가하였다면 왜 평형상태를 깨뜨리고 증가했을까를 고민하지 않고 그냥 그 박테리아나 바이러스가 원인이라고 판단한다. 그리고 대증적인 요법을 사용한다. 그리하여 증상은 완화되는 것 같지만 질병은 깊어간다. 가령 만성적인 피로를 겪는 사람은 피로의 원인들을 찾아서 개선해야 치유되는 것이지 피로회복제를 먹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만성적인 피로를 앓는 사람은 휴식을 취하고 스트레스 원인이 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피로가 풀린다. 하지만 서양의학은 배경 원인은 놔두고 환원적인 원인을 찾고 대증요법을 취한다. 이 모든 것이 생명 현상을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AI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가금류들이 왜 AI에 걸렸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 방역당국은 원인을 고병원성 H5N8 바이러스로 지목하고 그 바이러스에만 천착한다. 이것이 전형적인 환원주의적 시각이다. 모든 생명은 건강하게 살도록 진화되었다. 닭이나 오리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런 닭이나 오리가 병에 걸렸다면 그것은 이들 가금류가 건강하게 사는 상태인 동적평형을 깨는 요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원인은 고병원성 바이러스가 아니고 바이러스와 가금류가 동적평형상태에서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야 하는데 왜 그 관계가 깨졌느냐 하는 것이다. 거기에서 두 가지를 요소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가금류는 왜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면역력이 떨어졌느냐 하는 것과 바이러스는 왜 고병원성으로 변이하였느냐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전제가 되는 것이 생명관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은 서로 돕는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서양의학은 생명들의 관계를 적대적인 관계로 설정하고 있다. 이것이 세 번째 문제이다. 바이러스와 가금류의 관계가 잘못된 요인을 찾는 것이 어려울까? 그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닭들이 왜 AI에 걸리는지 알고 싶다면 공장식 축산을 하는 양계장에 가보라. 양계장에 들어서는 순간 닭들이 왜 호흡기 질병에 걸릴 수밖에 없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오늘날 공장식 축산을 하는 양계장은 산란율을 높이기 위하여 햇빛을 차단하고 인공조명하에서 닭들을 키운다. 좁은 닭장에는 네다섯 마리의 닭들이 갇혀 있어 마음껏 몸을 움직일 수도 없다. 하나의 계사에는 많게는 수만 마리의 닭들이 들어차 있다. 이 닭들이 싼 닭똥에서 올라오는 암모니아와 날개 짓과 함께 떠다니는 먼지들은 숨을 쉬기조차 쉽지 않다. 누구라도 이런 곳에서 한 달만 생활을 해보라. 호흡기 질병에 걸리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신기한 일이다. 또 닭들은 좁은 곳에 갇혀 운동도 하지 못하고 먹는 것은 살아있는 영양가라고는 없는 GMO 옥수수를 주성분으로 한 사료뿐이다. 평생 땅을 파헤쳐 지렁이를 잡아먹거나, 날개 짓 한번 시원하게 할 수가 없다. 그러니 스트레스가 쌓여 곁에 있는 닭을 죽을 때까지 쪼는 것이다. 닭들은 호흡기 질병에 걸리기 좋은 환경에 있기 때문에 호흡기 질병에 걸리는 것이다. 면역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고 그러니 어떤 요인에도 심각한 상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염병은 인간이 만들어낸 질병이다.

또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병도 원래 생명에게 있던 질병은 아니다. 우리는 인류 역사와 함께 다양한 전염병을 경험했다. 또 가축을 사육하면서 다양한 전염병을 접한다. 그러한 것을 바탕으로 전염병이 생명과 함께 한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모든 생명은 자신이 살고 있는 적소(niche)에 적응을 하며 진화를 해왔다. 그 niche를 이루고 있는 환경적 요인은 다양한 것을 포함하며 그 중에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또한 포함한다. 생명은 그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속에서 건강을 유지하며 살도록 진화를 해왔다. 나이가 들거나 영양상태가 좋지 않거나 하는 등 면역력이 떨어지면 동적평형 상태가 깨져 질병을 앓고 죽음을 맞기도 하지만 그것은 개체의 문제이지 집단 전체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 인류를 비롯하여 우리가 사육하고 가축들은 시시때때로 전염병을 앓고 있다. 그것은 인류가 도시라는 집단 서식지를 형성하고 또 가축을 밀집 사육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바이러스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면 이해할 수가 있다. 생명의 목적은 종의 생식과 번식에 있듯이 바이러스 또한 마찬가지다. 다만 방식이 다를 뿐이다. 바이러스는 어떤 생명에 감염된 후 복제하여 확산된다. 가장 일반적인 형태가 감기와 같은 형태이다. 감기도 원인이 influenza virus다. 바이러스는 어느 숙주에 감염된 후 자기 복제를 하고 또 다른 개체로 확산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숙주를 죽이게 되면 다른 개체로 퍼져나갈 수가 없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바이러스는 숙주를 죽일 만큼 치명적이지 않다. 숙주가 죽어버리면 다른 개체에게 퍼져나갈 기회도 없이 자기 또한 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바이러스들 중에 숙주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변이하였는가? 그것은 숙주가 다른 숙주를 만날 때까지 생존하도록 배려할 필요성이 없어진 것이다. 그것은 인류가 도시라는 공간을 만들어 밀집하여 거주하고 가축을 집단적으로 사육하면서 주변에 옮겨 갈 숙주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것을 더욱 강화시킨 것이 오늘날의 공장식 축산이다. 

또 가축 전염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 다지 치명적인 질병이 아니다. 가축전염병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고 살처분이라는 방식을 있게 한 구제역의 경우 당시 영국 정부와 농민들은 이 질병에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구제역으로 인해 죽는 소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1) 그러던 것을 영국의 부유한 귀족계층의 사육자들이 장기간을 고려했을 때 구제역이 비용손실을 유발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심각한 질병으로 규정하려고 노력하였다. 그 결과 구제역은 법률적 해법이 필요한 심각한 질병으로 규정되었으며 1892년 살처분이 공식적인 대응책으로 채택되었다. 이로써 국가에 의해 가축의 살처분이 실시되면서 구제역은 익숙하고 대체로 무시되어 온 병이 아니라 무서운 동물전염병이자 엄청난 비용손실을 초래하는 외부로부터의 침입자로 간주되었고, 광범한 국가적 통제수단을 통해 영국에서 근절시켜야 할 무엇이 되었다. 질병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바뀐 것이다. 구제역에 대한 새로운 프레이밍이 이 병의 임상적 심각성과 역학적 성질들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져왔다. 그런 점에서 구제역은 자연의 산물일 뿐 아니라 사회, 경제, 문화의 산물이기도 했다.2) 다른 가축전염병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태초에 바이러스에 의한 치명적인 전염병은 없었다. 그런데 인간에 의해 밀집 사육을 하여 가축들이 집단화되고 환경이 열악해지고 가축의 면역력이 저하되면서 가축의 바이러스에 의해 전염병이라는 것이 발생하게 되었다. 또 이 전염병이라는 것도 치명적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인간에 의해 치명적인 것으로 규정되어지면서 ‘치명적인 전염병’이 되었다.

왜 살처분을 하는가?

법정 가축전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많은 수의 가축들이 살처분되고 있다. 올해 들어 AI으로 인해 살처분 된 가금류는 1400만 마리가 넘어섰다. 이렇게 많은 가금류를 살처분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법률에 따라 AI이 발생한 농장으로부터 인근 500m 부근에 있는 가금류를 살처분하였기 때문이다. AI가 발생한 농장 인근에 살던 닭들은 건강하게 살고 있다가 영문도 모른 채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왜 이렇게 살처분을 하는 것일까? AI는 바이러스의 병원성에 따라 다양한 증상을 보인다. 주로 호흡기증상을 보이며, 설사를 하기도 한다. 산란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감소, 바이러스의 병원성에 따라 폐사율은 0∼100%로 다양하며 산란율도 40%∼50% 저하 또는 산란중지로 다양하다. 이러한 임상증상 중에 AI에 감염된 가금류를 살처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AI에 감염된 가금류가 병을 앓는 동안 너무 고통스러워서 살처분하는가? 아니다. 그럼 병에서 회복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살처분하는가? 그것도 아니다. 그럼 왜 살처분하는가? 그것은 간단하다. 양계업자들이 닭을 키우는 이유는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다. 닭이 이뻐서 키우는 것이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닭을 키우는데 닭이 아프면 돈 벌이에 지장이 있다. 산란계는 제때제때 계란을 낳아야하고 육계는 하루가 다르게 부쩍 부쩍 자라야 한다. 육계는 최근에는 35일을 키우고 도축한다. 그런데 AI에 걸리면 산란계의 산란율은 떨어지고 부쩍부쩍 자라야 할 육계는 병치례를 하느라고 자라지 않는다. 그것 자체가 손해이다. 또 공장식 양계장의 환경이 좋지 않아 호흡기 질병에 취약하듯이 환경이 좋지 않기 때문에 잘 낫지도 않는다. 그런 환경에서 아픈 닭을 데리고 있어봤자 출하시기만 늦어지고 하루하루가 손해다. 그래서 판을 다시 깔기 위해서 모두 살처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비용은 국가로부터 보상금이라는 명목으로 충당한다. 이번 AI와 관련하여 국가는 3월 말까지 살처분 농가에는 419억 원을, 계열 업체에는 609억원을 배정하였다. 양계농가는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돈만 벌면 된다. 

이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공장식 양계장은 도박과 같다. 다수의 닭들을 좁은 곳에 밀집 사육하니 항상 전염병의 위험이 있다. 공기가 좋지 않기 때문에 항상 전염성 호흡기 질병을 앓을 수 있다. 병을 앓는 닭은 돈벌이가 되어주기는커녕 병수발을 해야 하는 입장으로 만든다. 이런 불안정한 상태에서는 안정적으로 공장식 양계장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제도적으로 안전판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법정 전염병에 걸린 경우 살처분을 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로부터 보상금을 받는다. 그러면 병에 걸려서 시름거리는 닭들을 돌볼 필요 없이 모두 살처분 시키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 이로써 공장식 양계장은 안전한 제도적 안전판을 마련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단지 양계업자 만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 핵피아나 철피아 그리고 해피아와 같은 말들이 유행이다. 특정 산업과 관련하여 그와 관련된 사업가, 공무원, 정치인 그리고 학자들이 이권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있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축산업 분야에도 ‘축산업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이익을 공유하는 업계와 관련 공무원들 그리고 학자들이 하나가 되는 축피아가 있어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는 공장식 축산이 AI의 원인인 것이 뻔히 보이는데 철새 타령만 하고 있기는 힘들 것이다. 방역당국은 외국에서도 우리와 같은 방식으로 가축전염병에 감염된 가축은 살처분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외국 또한 이권단체들의 이익이 같은 방식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가축들만 떼죽임을 당하고 있다.

수평아리들을 위하여

동물보호단체 등에서는 AI로 살처분되거나 생매장 당하는 가금류 등을 보며 지금과 같은 살처분하는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고 보다 근원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유발하게 만드는 원인으로 공장식 축산을 지목하고 공장식 축산 방식을 변경할 것을 요구한다. 공장식 축산은 반생명적인 방식이다. 공장식 축산은 이윤을 위하여 생명을 온전히 수단으로 만들어버린다. 닭이나 오리와 같은 생명들은 하나의 생명으로써 존중을 받지 못하고 오직 더 많은 이윤을 위한 수단으로 되어버린다.


공장식 축산이 하나의 생명을 얼마만큼이나 이윤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지 보려면 수평아리를 처리하는 방식을 보면 된다. 닭은 크게 달걀을 낳는 산란계와 고기를 먹는 육계로 나뉜다. 계란이 부화장에서 부화되어 병아리들이 되면 이 병아리들은 병아리감별사에 의해서 성이 감별되어 진다. 산란계용 병아리들 중에 수평아리들은 알을 낳지 못하기 때문에 필요가 없고, 육계용 병아리들 중에서 수평아리들은 암평아리들 보다 사료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돈벌이로 사육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수평아리들은 암평아리들에 비해 움직임이 많아 더 많은 사료를 먹어도 살찌는 속도가 느리다. 그래서 수평아리들은 태어나자마자 감별사에 의해 골라진 후에 갈려서 다른 동물의 사료로 쓰여 진다. 한 해에 우리나라에서 도축되는 닭이 7억 마리가 넘는다. 이 닭들은 물론 모두 암탉들이다. 그렇다면 얼추 그 정도에 해당하는 7억에 가까운 수평아리들은 태어나자마자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오늘날 공장식 양계업에서는 7억에 가까운 수평아리들이 평상시에 죽임을 당하고 있다. 예전에는 육계용으로 수평아리를 키우기도 했다. 하지만 더 많은 이윤을 위하여 이제는 항상 수평아리들은 죽여 버린다. 평상시에도 매년 7억에 가까운 수평아리들을 죽여 버리기 때문에 거기에서 며칠 더 키웠다고 조금 더 큰 병아리를 죽이는 것이 양계업자는 낯설지 않을지도 모른다. 날짜로 따지면 기껏 30일 정도 차이밖에 안 나기 때문이다. 병아리를 죽이나 조금 더 큰 병아리를 죽이나 그것이 그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거기에 국가에서 보상금까지 받지 않는가?

닭을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평상시 한해 7억에 수평아리를 죽이는 양계업계는 기껏 1,400만 마리 죽인 것 가지고 문제를 제기하는 동물보호단체나 시민단체를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모른다. 닭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고 돈 벌이에 도움이 안 되어 죽여 버리는데 그것이 뭐가 문제냐고 생각할 것이다.

바로 그것이 문제이다. 오늘날 공장식 축산은 가축이라는 생명을 철저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버렸다. 우리가 살면서 지켜야 할 윤리원칙을 하나 꼽으라면 그것은 ‘네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것’이다. 네가 누군가로부터 맞기 싫으면 남을 때리지 말고 또 네가 누군가로부터 고통을 받기 싫으면 너 또한 누군가에게 고통을 가하지 말라는 것이다. 또 네가 누군가로부터 존중받고 네 목숨을 소중히 여긴다면 너 또한 누군가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매년 7억에 가까운 살아있는 생명을 구조적으로 죽일 수 있을까? 이러한 행위를 무엇이라고 변명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행위를 변명할 수 있는 논증을 찾기는 어렵다. 사람이 생존하는 것이 동물의 목숨을 지키는 것보다 더 먼저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사람이 생존하는 것과는 전혀 무관한 사항이다. 수평아리를 죽이지 않아도 사람들은 살 수 있다. 이것은 수평아리를 키우는 것보다 죽여 버리고 암평아리만 키우는 것이 더 많은 이윤을 얻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다른 생명을 이러한 식으로 다루어도 되는 것인가? 

오늘날 생명과 관련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그러한 일들은 모두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발생하는 일들이다. 이것은 사람의 목숨이냐 다른 종의 목숨이냐 상관이 없다. 생명보다는 이윤을 중히 여기면서 이런 저런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우리는 얼마 전에 생떼와 같은 수백 명의 어린 학생들이 죽음을 당하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만 했다. 어떻게 해서 그러한 일이 벌어졌는지 우리는 서서히 알아가고 있다. 그것은 어린 학생들의 목숨보다는 이익을 앞세운 자들로 인해서이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생명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에서 파생되어진다. 비록 병아리일지라도 생명보다는 이윤이 먼저라는 생각이 생명 자체를 가볍게 여기는 결과들을 가져오는 것이다. 수평아리들도 소중한 생명이다. 더 이상 소중한 생명을 죽이지 마라.




1) 김동광, 「우리에게 구제역은 무엇인가?」, 『민주사회와 정책연구』, 20, 2011, 18~20쪽.
2) 김동광, 앞의 글, 18~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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